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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Jan 31. 2019

이촌동의 작고 작은 라멘집
‘라멘테이’

HER report를 시작한 것은 5년 전이다. 둘이 함께 음식점을 돌아다니다 기억할 만한 곳 있으면 메모해둔 것이 여기까지 왔다. 그 때 처음으로 올렸던 포스트 중 하나가 동네 상가 지하에 자리잡은 일본가정식 겸 스시집 ‘키라쿠테이’였다. 일본인인 아와노 셰프가 혼자 이것저것 만들어주는 깔끔하고 부담 없는 저녁 전용 이자카야. 얼마 후 바로 옆쪽에 낮시간 라멘을 파는 ‘라멘테이’를 열었다. 한동안 두 곳을 운영하더니 어느날 기라쿠테이가 문을 닫았다. 이제 남은 라멘집 ‘라멘테이’. 예전 기라쿠테이의 흔적은 벽에 붙여놓은 사업자등록증으로 남아있다.


점심에는 라멘과 볶음밥, 라면과 간단한 일본식 중화요리를 한다. 일본식 돈코츠라멘이 기본인데 간장으로 간한 쇼유라멘과 된장 베이스의 미소라멘도 맛있다. 위쪽은 보드랍게 찐 그대로, 밑은 기름에 잘 튀긴 교자는 맥주 한 잔에 곁들일 때에는 좋은 선택. 저녁에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데, 점심의 라멘에 더해 깐쇼새우와 마요새우, 탕수육, 화과육, 사천식 닭튀김과 마파두부가 메뉴에 등장한다. 복잡하지 않고 대단하거나 엄청난 맛은 아니지만 일본식과 중식이 절묘하게 섞여 부담없는 한끼, 술안주로 크게 부족하지 않은 맛이다.  


두 사람이 앉는 테이블 두 개에 카운터에 8자리가 전부. 한국말이 유창하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 혼자 가게를 지키는 주인 아저씨는 늘 바쁘게 일한다(저녁 피크 타임에는 가끔 아르바이트생이 오기도 한다). 테이블에 놓인 주문지에 표시해 카운터에 올려 두면 아저씨는 주문을 확인해 음식을 만들어 카운터에 올려놓는다. 다 먹은 빈 그릇을 카운터에 올려놓고 계산하면 끝. 음료는 메뉴가 적힌 주문지에 적고 셀프서비스로 가져다 마신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말을 할 여지가 별로 없다. 생맥주는 물론 주인아저씨가 따라 서빙하지만.


주인아저씨는 말을 하거나 웃는 적이 거의 없어서 엄청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손님이 없는 저녁, 둘이 이것저것 시켜 밥을 먹고는 바보처럼 지갑이 든 손가방을 떡 하니 팔걸이에 걸어놓고 나와버렸다. 같은 지하층에 있는 수퍼에서 한참 장을 보고 있는데 주인 아저씨가 놀란 얼굴로 달려와 가방을 건네주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해서일까, 가방 두고온 지도 모르는 멍청함에 기가 막혀서일까, 그때 아저씨가 환하게 웃는 얼굴을 처음 보았다.


그래서 다음 날 저녁 다시 밥을 먹으러갔다. 바쁜 주인은 여전히 말없이 무뚝뚝하다. 여름 한정 메뉴인 중화풍 냉면과 마파두부밥과 탕수육을 시키고 생맥주를 한 잔씩 마셨다. 어제 고마웠다고 인사하고 싶었는데 아저씨는 여전히 면을 삶고 웍에 채소를 볶고 국물을 만드느라 뒤돌아 서있고 우리의 용건은 다시 주문지를 통해 이루어졌다. 쾌적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작은 공간, 엄청 맛있다고 하기도 어려운 음식. 그래도 우울해서 밥상 차릴 힘도차 없을 때면 슬리퍼 끌고 찾아가는 곳.츤데레 주인 아저씨가 웃는 모습을 다시 보려면 좀더 크고 중요한 걸 놓아두고 와야할지도 모르겠다.


영업시간은 길지 않다. 주중 점심은 11시 30부터 1시 30분까지, 저녁은 6시부터 9시까지, 용산구 이촌동 302-52 엘지프라자 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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