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들며 바뀌는 여행법 2

by HER Report

지난 1월 말 ‘나이들며 바뀌는 여행법’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의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3대 요소는 맛있는 것 먹고, 좋은 술 마시고, 잠자는(일본의 경우 온천욕까지 추가:) 것이다. ‘잘 쉬는 것’이 여행의 첫번째 핵심이었다. 나이들며 바뀌는 여행법의 2번째 특징이 있다면 ‘구경하기’와 관련이 있다. 여행 일정을 정리하다 보니 유난히 자주 가게 되는 곳들이 있었다.


미술관: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미술관은 우리의 공동관심사. 이번 런던 여행은 이런 기회가 극대화된 여행이었는데, 런던이라는 도시 자체가 훌륭한 미술관을 워낙 많이 보유한 데다, 특별 전시를 빼고는 거의 모두 무료입장이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직접 보면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하고, 잘 알지 못했던 작가를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도 있다. 숍에서 눈요기를 하거나 때로는 관련 상품을 사는 재미가 있으며,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면서 지친 다리를 쉬는 것조차도 즐거운 경험이다.


서점: 서점을 좋아하는 것은 멋진 건물이나 독특한 인테리어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상치 못하는 큐레이션으로 새로운 세상을 소개해주기 때문이다. 도쿄의 영어서점에서는 유달리 자주 일과 관련된 좋은 서적을 발견했는데, 이로 인해 새로운 사업이 열리기도 한다. 마셜 골드스미스라는 인물을 처음 알게 된 것도 도쿄의 서점이었다. 그 책을 접하게 되면서 아예 골드스미스 방법론을 배워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서점의 큐레이션은 나에게 새로운 인연과 인사이트를 만들어주는 마법같은 곳이다. 요즘은 아마존으로 손쉽게 외서를 구할 수 있지만, 이렇게 낯선 서점의 서가를 열심히 살피며 새로운 책을 발견하는 것은 즐거운 놀이다.


그릇가게 vs. 목공도구가게: 아내는 보석가게보다 그릇가게나 주방용품가게를 더 좋아한다(함께 보석 가게를 가본 기억이 없다). 이런 매장을 보면 진열장에 코를 박고 뚫어져라 쳐다본다. 왜 그릇가게를 좋아하는지 물어보면, “쓸모가 있잖아, 쓸모가. 저런 예쁜 그릇에 무얼 담아낼 수 있을지 상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오래 구경하고 소심하게도 마음에 드는 것 한두 개만 사고나서 서울에 돌아가면 “그때 더 사올 걸 그랬다!”고 번번히 후회하며 머리를 흔들어댄다.

나에게는 목공도구 가게가 그런 곳이다. 런던에서 100년 역사를 가진 도구 가게를 가봤지만, 내가 가본 최고의 목공도구 가게는 교토의 ‘기꾸이치몬지’다. 그 곳의 매력은 파는 물건의 수와 양에 있지 않다. 칼과 조각도, 대패 등 무언가 자르는 도구에 있어서는 최고의 제품들을 갖추고 있다. 화려한 로고나 디자인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덤덤한 대패와 숫돌, 조각도와 칼에서 장인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교토를 자주 가게 되는 것도 아마 이 가게 때문이 아닐까.


대학캠퍼스: 어쩌면 우리는 전생에 까막눈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자주 이야기한다. 여행갈 때면 서점과 대학캠퍼스를 빼놓지 않으니 말이다. 캠퍼스에는 나름의 낭만이 있다. 예전의 풋풋하고 순수한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일 지도. 가능하면 구내식당이나 카페, 관심있는 학과의 건물이나 강의실, 교과서와 참고도서를 파는 구내서점이나 도서관을 방문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서 깊은 대학 중 하나인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 역사와 지역의 특성을 잘 살려 최고의 농과대학을 자랑하는 홋카이도 대학, 윤동주와 정지용 시비가 자리한 교토의 도지샤 대학 등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골목: 서울시내에서 정겨운 골목을 찾기란 예전처럼 쉽지 않다. 우리가 도시 중 가장 좋아하는 곳은 교토인데, 골목의 매력을 빼놓을 수 없다. 골목 한 구역을 제대로 즐기는 데에도 1주일이 길지 않다. 작고 예쁜 가게들과 식당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교토를 아내는 10번 넘게, 나는 4번 정도 가봤는데, 앞으로도 교토는 가장 많이 방문할 도시일 듯하다. 가깝고 비행편이 많고 먹을 것과 볼 것이 많은 골목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런 작은 골목을 열심히 걸어다닐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뛴다.


혼자 갔던 곳 vs. 둘 다 가보지 못했던 곳: 아내와 나 모두 해외 출장이나 결혼 전 혼자 가본 곳들이 적지 않다. 혼자 갔었던 도시들을 함께 여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예전에 느꼈던 것과 사뭇 다른 감상이 든다. 그때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기도 하고 그때 좋게 보았던 것을 서로에게 소개해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번 런던여행은 각자 가보았던 곳으로 함께 다시 방문한 곳이었다. 헬싱키는 둘 다 가보지 못했던 곳을 처음으로 함께 갔는데, 그런 곳은 둘다 익숙치 않은 공간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둘 중 한 사람이 갔었는데 앞으로 같이 가고 싶은 곳은 스페인 바스크, 캐나다 핼리펙스, 미국의 포틀랜드와 시애틀이고, 둘 다 가보지 못했지만 언젠가 꼭 같이 가보고 싶은 곳은 미국의 뉴올리언즈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볼로냐다.


‘나이가 들며 바뀌는 여행법’이라는 제목에 대해 두 번에 걸쳐 글을 쓰면서 세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1) 정말 ‘나이가 들며’ 바뀌는 것일까? – 나이의 영향도 있겠지만, 정확히 이야기하면 여행의 횟수가 늘어가면서 바뀌는 것이 아닐까?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여행을 많이 하다 보면 그만큼 여정에서 크고 작은 실패도 많이 해봤을 것이고, 그런 경험이 생기면서 나름의 요령이나 스타일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2) 무엇이 바뀐 것일까? – 젊은 시절에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촘촘하게 일정을 짜고 유명 관광지들을 중심으로 되도록 많은 것을 보려고 했다면, 지금은 그냥 오래 잠을 자며 쉬고, 동네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니고, 관광명소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곳을 한두 군데 보곤 한다. 시간 여유를 갖고 가는 여행이라면 되도록 2주 정도 한 도시에서 지내려고 한다. 도쿄, 교토, 홋카이도, 런던, 파리, 로마… 2주가 아니라 2달을 있어도 할 것이 너무나 많은 멋진 도시들이다.


(3) 여행법이란 무엇일까? – 여행에 무슨 ‘법’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가장 좋은 여행법은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는 것 아닐까 싶다. 남들이 좋아하는 곳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발견하고, 그런 취향을 극대화하는 것이 가장 좋은 여행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 메모를 하고 사진을 찍고 HerReport에 남긴다. 이 기록을 보다 보면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새삼 확인하게 된다.


시간이 많고 돈이 여유있다면 무얼 하고 싶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수많은 도시 중 함께 가고 싶은 곳을 고르고 힘들게 일정을 맞춘 후 열심히 돈을 모아 떠나는 여행. 돌아올 때 견디기 힘들 정도로 우울해지는 것은 그 여행이 너무나 즐거웠기 때문일 것 같다.

나이들며-바뀌는-여행법-.jpg
나이들며-바뀌는-여행법-1.jpg
나이들며-바뀌는-여행법2.jpg
나이들며-바뀌는-여행법3.jpg
나이들며-바뀌는-여행법-4.jpg
나이들며-바뀌는-여행법-5.jpg
나이들며-바뀌는-여행법-7.jpg
나이들며-바뀌는-여행법-8.jpg
나이들며-바뀌는-여행법-9.jpg
나이들며-바뀌는-여행법-10.jpg
나이들며-바뀌는-여행법-11.jpg
나이들며-바뀌는-여행법-12.jpg
나이들며-바뀌는-여행법-13.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좋은 레스토랑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