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과 낯설게 하기

by HER Report

출근길에 다른 곳을 들려야 할 때, 나도 모르게 매일 다니던 길로 운전하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매일 같은 길을 지나 가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그쪽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익숙함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생각하려면 뇌에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생각없이 살아가는 아쉬움도 남긴다. 물리적으로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공간을 다니는 여행과 심리적으로 익숙한 시각이나 주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제를 다룬 독서는 우리를 낯설게 만들고 그로 인해 생각하게 만든다. 살아가면서 익숙함과 낯섦은 모두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에서는 ‘익숙함’을 목표로 삼는다. 내게는 목공기술이 그렇다. 상대적으로 뒤늦게 시작한 목공에서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은 낯선 기술을 점차 익숙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반면에 코칭이나 워크샵 진행(facilitation), 컨설팅은 20년 동안 해온 것이어서 반대의 방향으로 노력하게 된다. 너무나도 익숙한 것들은 변화나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낯설게 만들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새로운 주제의 독서나 다른 분야 전문가와의 작업이 되기도 한다. 위에서 ‘삶에서’ 익숙함과 낯설게 하기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방금 예를 든 목공이나 코칭 등은 모두 일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프로페셔널한 영역이 아닌 퍼스널한 영역에서 익숙함과 낯설게 하기는 어떤 관계일까?


행복이란 일상의 소소함이 주는 것이라는 견해에 동의한다. 주말 여유롭게 밥을 먹고 책과 TV를 보며 낮잠을 잘 때, 평일 저녁 식사와 함께 위스키 언더락을 마시는 익숙한 일상은 행복감을 준다. 여행은 낯선 질문을 통해 즐거움이자 고민을 안겨준다. 전주건, 삿포로건, 헬싱키건 마음에 여유가 있는 틈을 타고 긴 호흡의 질문이 떠오르는데 그중 하나는 “내가 삶에서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이번 여행에서 사회학자 김홍중의 <마음의 사회학>(문학동네, 2009)을 읽었다. 그가 기고한 글을 한데 묶은 것인데, 내가 이 책을 읽는 이유는 2장과 3장에 나오는 스노비즘(snobbism), 즉 속물주의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속물’을 설명하기 위해 프랑스의 문학비평가인 르네 지라르(Rene Girard)의 욕망의 삼각형을 사용하는데, 학부 프랑스 문학 수업에서 들었던 개념이기도 하다. 욕망의 삼각형이란 욕망의 구조가 주체-매개자-대상의 삼각형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고, 유명 소설의 주인공은 공통적으로 매개자, 즉 타자들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는 삼각형 구조에 갇혀 있다는 것이 그의 통찰이다. 김홍중씨는 이를 끌어내어 속물이란 “과도하게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데,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알지 못하는”(87쪽) 자로 정의한다. 내가 속물이란 개념에 이끌리는 것은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내가 나를 속물로 바라보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내가 정말로 삶에서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싶은, 달리 말하면 속물로부터 탈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의 다양한 지역을 많이 다녀본 아내와는 달리 나는 교토(3번)와 도쿄(6번)만을 몇 차례 다녀보았다. 일본의 47개 도도부현을 모두 돌아보자고 아내와 무모한 계획(일년에 두 개씩 돌아봐도 24년이 걸린다)을 세운 것은, 일본에 올 때마다 지역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고집스러운 장인을 접하면서 “나의 색깔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이번에 홋카이도 기차 여행을 다니면서 기차역에서 만난 ‘에키벤'(역 도시락)만 해도 그렇다. 어느 고속도로 휴게소를 가도 비슷한 어묵바와 떡볶이, 호두과자와 달리 지역 특산물을 재료로 기차역마다 개성 있는 도시락을 만들어 팔고 있다. 이런 것들을 접할 때마다 내가 가진 재료는 무엇이며, 그 재료를 어떻게 사용하거나 혹은 사용하지 않음으로 인해 어떤 색깔의 삶을 살지 궁금해진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색깔을 욕망하며 자신의 색깔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속물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또다른 낯선곳으로 향하는 기차 탈 시간이 다 되었다.

익숙함과-낯설게-하기-1.jpg
익숙함과-낯설게-하기-2.jpg
익숙함과-낯설게-하기-3.jpg
익숙함과-낯설게-하기-5.jpg
익숙함과-낯설게-하기-6.jpg
익숙함과-낯설게-하기-7.jpg
익숙함과-낯설게-하기-9.jpg
익숙함과-낯설게-하기-10.jpg
익숙함과-낯설게-하기-11.jpg
익숙함과-낯설게-하기-12.jpg
익숙함과-낯설게-하기16.jpg
익숙함과-낯설게-하기-13.jpg
익숙함과-낯설게-하기-14.jpg
익숙함과-낯설게-하기18.jpg
익숙함과-낯설게-하기-19.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루과이가 축구만 유명한 게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