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카 위스키 요이치 증류소에는 ‘리타 하우스’란 곳이 있다. 또한 요이치에는 리타로드(Rita Road)라는 길도 있다. 리타는 니카 위스키 창립자 다케쓰루 마사타카의 아내, 제시 로베르타 코완(Jessie Roberta Cowan, 1896-1961)의 애칭이다. 리타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 근처의 한 지방에서 의사 집안의 3녀 1남 중 첫째로 태어났다. 리타의 여동생이 글래스고우 대학 의대 교수진으로 있었는데, 일본인 유학생인 마사타카에게 남동생에게 유도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이런 인연으로 코완家를 방문하게 된 마사타카는 첫째인 리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1919년 마사타카는 프랑스 보르도에 가서 와인을 배우고 오면서 향수를 선물로 주었다. 리타는 답례로 위스키 찬가를 담은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번스(Robert Burns, 1759-1796)의 시집을 주었다고. 당시 스코틀랜드에서는 13가지 재료를 섞어서 만드는 푸딩에 은화나 은으로 만든 골무를 넣어놓는데, 푸딩을 먹다가 이를 발견하는 사람에게는 행운이 온다는 속설이 있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때 리타의 집에서 식사를 하다 마사타카는 은화를, 리타는 골무를 푸딩에서 발견했고, 1년도 아닌 한 달 뒤인 1920년 1월 이들은 글래스고우의 등기소에서 결혼을 한다. 그해 5월 헤젤번(Hazelburn)증류소에서 몰트위스키 제조와 브랜드 기술을 배운 뒤, 이 둘은 11월에 일본으로 귀국한다.
그녀는 평생 마사타카와 함께 하면서 심리적 지원은 물론, 일본에서 영어와 피아노를 가르쳐 번 돈으로 집안을 돕기도 했다. 리타가 일을 하면서 쌓게 된 네트워크는 후에 마사타카가 니카 위스키를 설립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대는 투자자들을 연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리타는 마사타카를 돕기 위해 일본어만을 사용하고, 일본 전통과 요리에 익숙했다고 한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은 그녀에게 큰 시련을 주었다. 일본 사람들이 적국인 영국의 술을 주조하는 마사타카는 물론이고 영국 출신인 리타를 배척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일본에서 입양한 딸도 자신의 어머니를 싫어했고, 리타와 마사타카의 지붕에 있던 안테나를 보고 일본 정부는 그들이 영국이나 러시아를 상대하는 스파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니, 1940년대 낯선 일본 땅에서 그녀가 겪었을 심적 고통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34년 대일본과즙주식회사로 시작하여 요이치에 증류소를 만들고, 첫번째 위스키인 ‘니카 위스키’ 제조를 개시한 것이 1940년. 1952년에는 회사 이름을 니카 위스키 주식회사로 변경하게 되고, 1961년 1월 64세의 나이로 리타(1896-1961)는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 마사타카는 그 후에도 미야기쿄 증류소 설립(1969년), 공장등을 설립하며 일하다가 85세의 나이로 1979년 세상을 뜬다. 이 둘의 이야기는 드라마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얻었다.
리타에 대한 자료를 읽다가 든 생각. 만약 리타가 없었다면 마사타카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는 니카 위스키를 만들 수 있었을까? 리타가 없이 위스키를 만들었을수도 있겠지만,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스코틀랜드 지방과 유사한 일본 내 증류소의 위치를 놓고 마사타카는 리타에게 조언을 받지 않았을까? 마사타카가 스코틀랜드에서 유학을 했지만, 그가 머물렀던 기간은 2년이었다. 증류소를 만들고 위스키를 만드는 과정에서 리타는 마사타카에게 영감을 준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을지…
참조:
Magnus Bennett, “The Scottish mother of Japanese whisky”, BBC, 2015. 1. 11.
“Rita Taketsuru”, Wikipedia.org.
니카 위스키 요이치 증류소, 마사타카 집 내부 “마사타카, 리타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