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갈 때면 나타나는 아내의‘반절 증후군’에 대하여

by HER Report

“난 틀렸어… 날 그냥 여기에 버리고 가…”


여행의 마지막이 다가오면 아내가 늘 내게 비장한 톤으로 하는 말이다. 아내는 여행의 ‘반절’을 넘긴 시점, 특히 1/3에서 1/4이 남은 시점부터 거칠어지고 ‘난폭’해진다. 여행의 즐거움이 얼마 남지 않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쌓여있을 일들이 걱정되서인지 아쉬움과 우울함 사이를 오간다. 물론 여행 끝의 아쉬움이야 나도 있지만, 아내에게는 일정한 패턴이 있어 이를 ‘반절 증후군’이라 부른다. 내 관찰에 의하면 반절 증후군은 일주일 이내의 비교적 짧은 여행에서는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오늘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당일에는 이미 포기해서인지 마지막 날에도 비교적 덜하다.


반절 증후군의 원인과 처방이 있을까? 그동안 우리 여행의 리추얼(ritual)처럼 자리잡아온 이 증후군에 대해 혼자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난 그 힌트를 식사시간에서 발견한다. 아내가 반절 증후군으로 인한 한숨과 아쉬움을 표현하는 것은 보통 여행 중반을 넘긴 시점에서 저녁을 먹고 해가 진 후 호텔로 걸어들어갈 때인데, 신기한 것은 밥을 먹을 때에는 반절 증후군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아내는 맛있는 곳을 찾아가서 맛있는 것 먹는 것을 매우 즐긴다. 이 부분에서 재즈 즉흥연주나 코미디 즉흥연기 훈련의 교훈을 떠올렸다. 바로 “be there”라는 것이다. 즉흥, 즉 improvisation에서는 상대방과 연기나 연주를 함께 하면서 ‘이 순간, 바로 여기’에 집중하라고 가르친다. 상대방과 대화를 하면서 머릿속으로는 딴 생각을 얼마나 많이하는가!


다시 반절증후군으로 돌아가면, 식사 시간에 아내의 반절 증후군이 사라지는 것은 음식과 대화, 식당에 완벽하게 몰입하여 ‘be there’하기 때문이라고 난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반절 증후군이 나타나는 이유는 여행의 끝이 다가올수록 현재 즐기고 있는(혹은 즐겨야 할) 경험에 be there하지 못하고, 자꾸 여행 이후에 벌어질 일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쉬워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나는 좀 덜한 편인데, 나는 이를 아내의 계획성에서 찾는다. 원고를 쓸 때, 아내는(에디터의 경험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지만) 마감에 쫒겨 글 쓰는 것을 싫어해 보통 미리 써놓는 편이다. 일을 할 때에도 늘 미리미리 준비를 해 놓는다. 반면 나는 늘 마감에 닥쳐서 벼락치기를 하는 편이다. 말도 안되는 연결일지 모르나 항상 미래를 먼저 생각하고 습관이 여행에서도 발휘되어, 여행의 절반이 지나면 돌아가서 할 일과 현실을 미리 생각하는 데서 나오는 것은 아닐지.


결국 이론적으로 반절증후군의 해결책 역시 현재의 경험에 집중하는 것인데, 문제는 그게 말처럼 쉬운가. 여행 일정의 절반을 넘긴 시점에는 저녁식사 시간을 늦게 잡아 밥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의 격차를 줄이면 좀 나을까?


암튼, 인생에는 “Be prepared” 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여행이나 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처럼 “Be there”해야 하는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가 이 글을 보면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아 뭐래… 빨리 짐이나 싸!”


*사진은 이번 여행에서 반절이 넘어가는 시점에 토야호수에서 찍은 것이다. 호수와 바다(태평양)이 갈리는 것처럼 그 즈음부터 아내의 기분도 바뀌기 시작한 것 같다… 201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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