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뒤늦게 진실을 깨닫는다. 그것으로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오스카 와일드)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십시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얼마전 우연히 TV를 보다가 <몰입>이란 책으로 유명한 황농문 교수의 강좌를 잠깐 보게 되었습니다. 강연 제목은 ‘Beautiful Life – 아름다운 삶과 죽음.’ 강연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부고 기사(obituary)에 대한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습니다(저는 ‘쿨하게 생존하라’라는 책을 갖고 워크샵을 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자신의 부고기사 쓰기’입니다). 핵심은 평소에 죽음에 대해 의식하는 사람들은 보다 삶의 핵심이 무엇이고,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고, 결국 더욱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에도 그런 부분이 나옵니다. 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오늘이 마지막날이라면 과연 나는 오늘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회피하고, 의식하지 않는 사람은 인생의 껍데기에 치중할 수 있다는 경고를 황 교수는 하고 있었습니다.
이 강좌를 보고 나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죽음과 여행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물론 누구도 생각하기 싫겠지만) 만약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다면, 여행은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우선순위에 들어가게 될까요? 아마도 얼마나 회사에서 높은 자리에서 일했는지보다는, 혹은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는가보다는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앞에 두고, 평소 생각만하고 가지못했던 사랑하는 사람과의 여행을 더 아쉬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얼마전 한 후배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들었습니다. 잘 다니고 있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1년간 가족들과 세계여행을 하는 계획. 그것도 내년에 말입니다. 물론 일부 저항(특히 아내로부터)과 걱정(여행 다녀와서 무엇을 하지?)이 있긴 하겠지만, 혹은 그 계획이 당장 실행 안 될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 만약 후배가 가족들과 세계여행을 한다면 후에 나이들어 노인이 되었을 때, 가족들과의 세계여행은 가장 가슴 뿌듯한 기억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행은 다양한 형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후배는 최근 당일로 제주도에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더군요. 또 어떤 사람은 서울에서 되도록 다양한 구(종로구, 도봉구, 중구, 용산구… 등)에서 살아보고 싶은 꿈을 꾸기도 합니다. 저는 최근 여행을 다니면서 그런 질문을 하게 되더군요 “만약 내가 2019년에 서울이 아닌 다른 도시에서 1년을 살아야 한다면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 통영이나 부산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일본의 교토가 될 수도 있고, 누가 알겠습니까…로마나 파리가 될지도.
여행은 단순히 휴가라기보다는 우리 삶에서 우선순위가 매우 높은 ‘프로젝트’일 수 있습니다. 노인이 되고, 더 이상 움직이는 것이 편치 않을때, 죽음을 매일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를 보낼 때, 유일하게 끄집어 내어 추억을 되살리고, 입꼬리를 위로 올릴 수 있는 그런 프로젝트 말입니다. 회사 프로젝트가 아닌, 내 삶의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