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워윅(Joe Warwick)
2주마다 방송하고 있는 SBS 라디오 최영아의 책하고 놀자에서 9월 첫 책으로 Where Chefs Eat을 소개할 예정인데요. 얼마전 녹음 준비를 위해 이 책을 다시 살펴보다가 이 책의 기획자인 Joe Warwick의 기사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가 이 책을 만들게 된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책만 봐서는 그냥 “레스토랑의 전화번호부”정도로 느끼실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만든 과정이나 이 책에서 사용하고 있는 카테고리 선정 등을 아시면 이 책은 훨씬 더 ‘맛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먼저, 조 워윅은 이 책의 아이디어를 만든 사람이고, 레스토랑 추천을 부탁할 전세계 최고의 쉐프들을 선정하고 리뷰한 사람입니다. 이 책에도 보면 조 워윅을 author라고 표현한 부분은 보이지 않고 책의 겉표지에도 그의 이름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안 표지에 “Chef selection and reviews by Joe Warwick”이라고 나오고, 그가 서문(preface)을 썼습니다.
조 워윅은 유명한 레스토랑 비평가입니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좋은 직업이 있을까 싶네요:)
그는 미국 버지니아 집 근처에서 대학에 들어가기 전 레스토랑 웨이터로 근무했습니다. 대학에 가서 영문학과 드라마를 공부했는데요. 인터뷰에 보면 막상 자기 전공으로는 달리 할 일도 없고 웨이터밖에 할게 없겠다 싶었답니다:) (불어를 전공했던 저로서도 공감이 갑니다:) 그래서 그는 각지의 레스토랑을 다니면서 일을 하게 되는데요. 웨이터로만이 아니라 commis chef(쉐프의 제일 밑단계)*로 일을 하다보니, 주방에서 윗사람들이 소리치고 수직적 문화로 일하는게 싫어서 커리어 전환을 생각할 즈음 저널리즘 수업을 듣게 됩니다. 이 수업에서 한 교수가 각자가 잘 아는 것에 대해서 글을 쓰라는 과제를 주게 되는데요. 이 수업에서 그는 자신에게 익숙한 레스토랑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발전해서 그는 여기저기 잡지에 레스토랑에 대한 글을 기고하게 되고, 후에 World’s Best 50 Restaurant이라는 유명한 레스토랑 리스트를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World’s Best 50 Restaurant을 만들고 나니 자신이 중요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무엇을 위한 베스트인가(best for what)?”라는 질문이 이 리스트에는 빠졌다는 것이지요. Best가 모든 경우에 best일수는 없는 것이니 말입니다. 이 불만이 그에게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 작은 사건은 그가 지금은 문을 닫은 전설적인 레스토랑 엘불리(스페인)에 갔던 일입니다. 그는 운 좋게도 엘불리에서 세 번이나! 식사를 해봤다고 합니다. 한 번은 엘불리에 갔는데, 이 레스토랑에서 손님들에게 “바르셀로나에서 가볼만한 식당” 리스트를 나눠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호텔 컨시어지에 가면 이런 레스토랑 리스트를 주는 경우는 있지만, 레스토랑에서 다른 레스토랑을 추천하는 리스트를 준다니…(자신감의 표현이라고 이해해야겠지요?:)
조 워윅은 이 리스트를 받아보고는 “만약 전세계 최고의 쉐프들이 이런 리스트를 만들어 책으로 만든다면…”이란 멋진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유명 출판사인 파이돈(PHAIDON)에 찾아가 이런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책을 만들게 된 것이 바로 Where Chefs Eat입니다.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지요. 저와 아내가 이 책을 구매한 것이 2년전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한 미술관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제목만으로 확 끌리는 책이었습니다. 왜 그런 것이 궁금할 때가 있잖아요…의사들은 자신이 아프면 누구에게 진료를 받고 싶어할까? 변호사는 자기에게 사건이 발생하면 누구에게 사건을 의뢰할까? 가수들이 인정하는 가수는 누구일까? 이 책의 컨셉은 딱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2013년(사진)에 나왔고, 2015년에 업데이트 판(주황색 표지)이 출판되었습니다. 업데이트 판 기준으로 보면, 이 책은 630명의 쉐프들을 설문조사하여 70개국에 3,250개 식당을 추천했는데요. 거기에는 스톡홀름의 핫도그 판매대(World’s Best 50 Restaurant같은 곳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을!)도 있고, 새벽 4시에 초밥을 먹을 수 있는 곳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지역별로 소개를 해놓았는데, 아쉽게도 한국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David Chang이나 her-report.com에서도 소개했었던 Corey Lee등 한국계 유명 쉐프들이 포함되어 있기는 합니다)
조 워윅이 best for what?을 묻지 않았던 것을 아쉬워하면서, Where Chefs Eat을 만들 때에는 총 8개의 카테고리를 만들었고, 쉐프들에게 그냥 좋은 식당 추천하지말고, 이 8가지 중에 한 가지와 연결지어서 추천하도록 했습니다:
1) Breakfast – 이 곳에서 아침을 먹지 않고는 하루를 시작하지 못하는 곳
2) Late night – 밤늦게 일은 마쳤지만, 아직 밤은 길고, 쉐프들이 밤늦게 배고픔의 고통을 치유하는 곳
3) Regular neighborhood – 쉐프의 직장이나 집 근처에 있는 식당 중 정기적으로 갈 만큼 좋은 음식을 서빙하는 곳
4) Local favorite – 쉐프의 고향 음식을 가장 잘 만들어내는 식당
5) Bargain – 입맛이 까다로운 쉐프들이 돈이 없지만 가는 곳
6) High end – 돈이 문제가 되지 않는 특별한 상황에서 쉐프들이 가는 곳
7) Wish I’d opened – 동료 쉐프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는 항목. 자신이 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고 느끼는 식당
8) Worth the travel – 그 식당에 가기 위해 여행을 할만한 가치가 있는 식당
조 워윅이 살아온 이야기를 읽으면서 connecting the dots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로 일했고, 주방의 신참 쉐프로 고생했고, 그러나 쉐프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글쓰기 수업에서 레스토랑에 대한 글을 쓰면서 레스토랑 비평가가 되었고, 유명한 레스토랑 리스트를 만들었지만, 불만족스러웠던 점을 생각하게 되었고, 엘불리에서 나누어주는 리스트를 보고는 이전 리스트에서 느꼈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출판사에 제안을 하고,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고…
삶을 살다보면 때론 일이 안 풀릴 때도 있습니다. 인생에서 어느 시점이 불행할 때도 있지요. 하지만, 안 풀리는 것에 불만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연결지어가는 것, 대담하게 연결하고, 질문하고, 상상하고, 쓰고, 시도하고, 제안하고, 결과를 만들어가는 것. 때론 그것이 기대한 만큼 좋은 결과가 아닐지 몰라도 과정 자체로부터 우리는 배우고, 또 행복감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 쉐프의 등급
Chef de cuisine (Executive chef 혹은 Master Chef)
Sous-Chef
Chef de partie
Commis Ch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