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시내에서 먹고 마시며 배운 것들
2015-12-29
“자기만의 시각을 갖는다는 것은 IQ로 따지면 50의 가치가 있다”
(“Having a point of view is worth 50 IQ points.”) – PepsiCo 前 CEO Roger Enrico
교토 시내에서만 열흘 넘게 지내며 많은 식당들을 가보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가라스마 도리(karasuma-dori)와 시조(Shijo)와 산조(Sanjo) 근처를 계속 걸어 다녔습니다. 이번에 가본 식당 중에는 좌석이 10여개 정도인 작지만 특색있는 식당 들이 많았습니다. 밖에서만 보고 들어가보지 못한 식당들도 작지만 자기만의 색깔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식당에 들어가서 직접 먹어보고, 주인과 짧은 대화를 나눠보면서 오너가 계산대 앞에만 앉아있거나, 인테리어에서부터 재료와 메뉴까지 대기업에서 만들어주는대로 가져다 파는 국내의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이 대비되었고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국내 음식점의 절반은 1년 안에 폐점을 하며, 10곳 중 8곳은 5년 안에 문을 닫습니다. (출처: SBS 뉴스, 김현우 기자, “개업 1년 안에 폐업…문 닫는 식당 ‘수두룩'”, 2015. 12. 23).
서울이든 교토든 오래 갈 수 있는 식당(사업)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는 무엇일지 생각해보다가 두 가지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첫째는 기본입니다. 교토의 어느 식당을 들어가도 얄미울 정도로 ‘기본’을 잘 지키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화장실입니다. 서울에 있는 식당의 화장실보다 크기는 작았지만, 어디라 할 것 없이 청결함은 예외가 없었습니다. 식당과 화장실의 가장 중요한 기본 중의 하나는 깨끗함이겠지요. 또 대부분의 식당에서 손님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옷을 벽에 걸어 놓거나, 깨끗한 바구니에 소지품을 담아 놓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철저하게 배려하고 있었습니다. 식당에 들어선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두번째는 ‘오너의 취향’이었습니다. 규모도 작고, 몇 천원짜리 단품을 내 놓는 작은 레스토랑도 모두 오너의 취향을 메뉴와 음식에 담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직접 음식을 만들기에 가능한 지도 모루겠습니다. 여러 식당을 다녔는데 서로 다른 매력을 느끼느라 지겨울 틈이 없었습니다.
서울 시내의 많은 식당들처럼 ‘규격화’된 인사가 아니라, 내성적인 주인은 수줍은 방식으로, 외향적이고 시끌벅적한 주인과 직원들은 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와인이나 음료에 있어서도 자기들만의 색깔이 있었습니다. 어느 곳은 자기들이 추천하는 단 한 가지 와인만을 내 놓는 곳이 있었고, 한 스페인 식당에서는 스페인 맥주만 20여가지 넘게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결코 화려한 인테리어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스포츠, 그릇, 미술 등을 강조하고 있었구요. 식당에 흐르는 음악에 있어서도 취향이나 개성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오늘 저녁 가본 식당에서는 주인 부부가 테이블 세 개, 여섯명이 앉는 바를 놓고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의 프렌차이즈 식당보다 수입이 많을지 적을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할 것 같습니다. 나이 들어 식당 운영을 접을 때까지 수십 년 동안 이 식당은 오래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 손님의 반응을 확인하고 또 이 과정을 즐기는 듯 했습니다. 교토에서 가본 많은 식당에서 이미 나름의 전통을 느낄 수 있었고, 미래에도 오랫 동안 지속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속가능하게 해주는 힘은 결국 기본은 철저하게 지키면서도 오너의 취향이자 색깔을 확실히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카피한다고 될 것이 아닌 자신들만의 취향. <K팝 스타>에서 세 심사위원이 강조하는 핵심 중 하나는 기본기 위에 자기만의 색깔을 갖추라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만의 취향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아니면 개성을 죽여가고 있는지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21세기에 취향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새로운 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철저한 기본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요. 식당 뿐이겠습니까. 자기만의 직업을 만들어가는데 있어서도 이 곳 식당에서 먹고 마시며 배운 이 교훈은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