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블랑 매뉴팩처에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큰 나라 사이에 끼어 때마다 격동을 경험했고 일년에 절반은 겨울, 대부분 척박한 산지라 농사짓기도 쉽지 않고, 먹고 살기 막막해 외국 용병으로 나가야 했던 나라 스위스.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안전한 나라가 되었으니 이 나라 사람들 참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펜으로 친숙하지만 최고의 무브먼트 메이커인 미네르바를 인수해 20여 년 넘게 시계 분야에 투자해 온 몽블랑의 설립 110주년, 스위스 매뉴팩처를 방문한 출장. 두 군데 공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이야기 나누다 보니 대부분의 와치메이커들은 20대 초반에 일을 시작하는데, 이때 이미 충분한 기술을 익힌 상태랍니다. 스위스는 12살이 되면 대학을 가는 인문계로 진학할지, 전문직업계로 진학할지 결정을 하고 15살부터 전문학교에 들어가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 이상 이론과 실제 기술을 익힌다고 합니다. 대학에 가는 경우는 30퍼센트 미만, 70퍼센트는 직업 교육을 선택하는데 연봉이나 사회적 인정에서 별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현장에서 경력을 쌓아가며 30대 초중반이 되면 능력에 따라 브랜드를 대표하는 책임자, 개발자, 기술자가 될 수 있답니다.
아침 6시 반이면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작업장에 도착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부품으로 최고의 시계를 만들어내는 장인들. 가장 정교하고 정확하고 아름다운 시계를 위해 열심히 일한 후 4시 반에 퇴근해 스키나 등산, 취미와 친교를 즐기는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립니다. 정년은 65세지만 75세에도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와치메이커도 있답니다. 일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해 저희가 물어보는 질문에 열정을 담아 알려주는 모습이 참 좋아보였습니다.
15살. 너무 어린 나이에 인생의 중요한 방향을 결정하는 건 아닌가, 자라며 마음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그때 또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하네요. 첫날 만난 르로클 매뉴팩처 디렉터 티에리 주노는 인문계를 선택해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시계업계에서 일하며 저녁시간과 주말을 이용해 6년간 와치메이커 교육을 받아 경영과 시계제작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답니다.
대학진학율은 거의 세계 최고, 학자금 융자까지 받아 공부를 마친 20대 중후반까지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고민하며 구직난에 고생하는 우리 젊은세대가 떠올랐습니다. 40대 중반, 여전히 좀 더 자라면, 아니 나이 들면:) 무슨 일을 해야 하나 여전히 갈피 못잡고 고민하는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혹시 그동안 나도 몰랐던, 시계제작자로 재능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워치클래스에 참가했습니다. 한 시간이 채 못되어 눈 아프고 손 떨리고 침 바싹 마르고 혈압 올라 뒷목 당기는 걸 보니, 안되겠네요.
저의 인생 후반은 여전히 물음표인 채로 매뉴팩처를 나섰습니다. What will be, will 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