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자의 100년 문구점 ‘이토야’
어린 시절부터 저를 설레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는 색깔이 예쁘고 고급스러운 종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놓고 쓰지 않은 수첩과 노트가 집에 한 가득입니다. 이번에도 도쿄여행가는데 아내가 제게 한 가지 약속하라고 하더군요. 문구류는 절대 사지 않겠다고:)
그래도 구경까지 포기할 수는 없지요. 긴자거리에 있는 이토야(伊東屋)에 들렀습니다.
1904년에 세워진 문구점이니 올해로 112년째입니다. 문구점이 100년 넘게 지속되고, 오늘날에도 시민의 사랑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문화란 것은 빨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구나, 단순히 외관만 비슷하게 만들어낸다고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쁜 디자인이아니라, 이런 문구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들의 취향이었습니다. 100년이 넘게 이런 문화가 차곡차곡 쌓이고, 지속되며, 여전히 즐기는 문화란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훌륭한 한지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한지를 사용하고 즐기는 문화는 없습니다. 한복도 그렇지요. 문화란 오랜 기간 동안 자연스럽게 즐기며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하나 이토야에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경험의 디자인입니다. 예를 들어 2층은 각종 편지지들로 한층 가득 차있습니다. 이 층의 테마는 Share, 즉 나눔입니다. 이 곳은 단순히 예븐 편지지와 봉투를 ‘파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방문객들이 편지지와 봉투를 고른 뒤, 문득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다면 창가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서 편지를 쓰게 되어 있습니다. 편지만 쓰면 안되겠지요. 옆에서는 전세계로 편지를 부칠 수 있도록 우표를 팔며, 동시에 우체통까지 구비되어 있습니다. 긴자라는 비싼 땅에 ‘돈이 안되는’ 이런 서비스와 공간을 만들어 놓은 것은 장기적인 시야와 좋은 문화를 만들어 가려는 생각 없이는 불가능하겠지요.
이토야에서 돌아와서 오래 전 사놓은 빛바랜 색지를 다시 꺼내볼 참입니다. 그리고 나에게는 어떤 문화가 있는지 한 번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