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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Mar 06. 2019

Money vs. Time


“정말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구나…”
아내가 불평섞인 듯 날카롭게 이야기했습니다. 종로 낙원상가에서 중고 피아노를 사서 작업실에 들여놓고 일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을 초빙해서 재즈 피아노를 배우자 아내로부터 나온 반응이었습니다:(


유치원에서 중학교 1학년까지 7년 동안 피아노를 배운적이 있습니다. 마지막 6개월 정도는 클래식 피아노가 따분하게 느껴졌는지, 재즈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에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 다시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는데,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며 또 그만 두었습니다. 작업실을 오픈하면서 다시 피아노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퇴근길 낙원상가에 갔습니다. 피아노 가게를 뒤지다가 한 구석에서 zimmermann이라 쓰여져있는 아담한 중고 피아노를 발견했습니다. 동독에서 1990년에 만들어진, 26년된 중고 피아노였습니다. 저는 처음 들어본 피아노 브랜드였는데, 독일에서는 나름 전통 있는 브랜드라고 하더군요. 다만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없어서 가격은 야마하에 비해 절반이었습니다.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zimmermann이 독일에서는 목수, 목수의 후예라는 의미로 쓰여졌다고 합니다. 기분좋은 우연이더군요. 예전 재즈 피아노 선생님께 연락을 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피아노 레슨을 받고 있습니다. 요즘은 마이클 잭슨의 ‘벤’을 배우고 있구요.


얼마전 SBS의 강의모 작가의 신간 <땡큐!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의 북 콘서트의 공동사회를 맡았습니다. 제가 출연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 ‘최영아의 책하고 놀자’의 작가이기도 하고, 이 책 20여명의 인터뷰이 중 한 사람이어서 강 작가와 공동 사회를 본 것인데요. 이 행사를 통해 이 책에 나온 여러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라봄 사진관의 나종민 대표의 경우 억대 연봉을 받고 지사장을 하다가 마흔 다섯에 그만두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장애인과 소외계층에게 사진을 무료로 촬영해주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북 콘서트에서 그 역시 아내에게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며 산다”는 불평을 들었다고 고백하더군요.


우리 인생에는 두 가지 중요한 선택이 있습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두 가지를 모두 다 충분히 갖기는 힘듭니다. 하나를 많이 갖게 되면 또 하나는 줄어듭니다. 그 두 가지는 돈과 시간입니다. 직장에 다닌다는 것은 연봉이라는 돈을 받고, 내 시간을 저당잡히는 계약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주 40시간이지만, 사실 우리의 현실은 한정된 돈을 받고 내가 가진 시간을 거의 무한정 주는 계약입니다. 야근이라는 이름으로, 주말 워크샵이라는 이름으로. 북 콘서트에서 만난 분들은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결국 일정 부분 돈의 포기를 의미합니다. 제 경우를 놓고 보더라도 직장에 다닐 때에 비해 버는 돈은 거의 절반 정도로 줄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경우는 거의 80% 정도 줄어든 것 같습니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전체 수입은 훨씬 줄었고, ‘회사일’을 위해 투입하는 시간 대비 버는 돈은 훨씬 늘었습니다. 결국 돌아보면 독립하여 제 회사를 설립하고 1인 기업으로 10년째 일해오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사고’, 돈이 들어올 수 있는 기회는 ‘판’ 것이 맞습니다.


만약 시간을 사지 않았다면 한 달씩 아내와 여행을 가거나, 책을 네 권 쓰고, 두 권을 번역하고, 라디오 방송을 하고, 목공을 하고, 피아노를 배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얼마전 <땡큐 터닝포인트>를 놓고 라디오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최영아 아나운서가 제게 10년전 터닝포인트를 가진 후 가장 바뀐 것이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제 대답은 ‘시간의 자유’였습니다. 사실 독립을 할 때에는 시간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는데, 지난 10년 동안 가장 커진 것이 시간의 자유에 대한 소중함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돈을 더 많이 벌고 싶고, 늘 시간과 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겠지만, 앞으로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제 시간의 자유를 희생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나 저나 아내가 이 글을 보고 또 한 소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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