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고
이런 질문은 피하고 싶어집니다. ‘어떻게 살까’도 아닌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질문말입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지금 안 읽었다면 나중에 후회했을 것”이란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누구도 어떻게 죽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막연하게 아프면 요양원가고, 병원에서 죽겠지…정도로 생각하지 않을까요?
이 책을 보면 우리 모두가 앞으로 늙어가면서 겪게 될 상황들이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1. 엄지 아랫쪽을 만져보면 통통하게 올라온 부분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이 부분이 평평하게 힘을 잃고 주저앉게 됩니다.
2. 화장실을 가기 힘들어지고
3. 밥 먹고 옷 입는 것, 목욕, 몸단장을 혼자서 못하는 시기가 오며
4. 침대나 의자에서 일어나거나 걷기가 힘들어지는 시기가 옵니다.
쇼핑을 하고 요리를 하며, 전화를 하거나 외출 등을 혼자서 할 수 없는 시기가 온다는 것이지요. 우리 뇌의 정보처리 속도는 40세 이전부터 떨어지기 시작하며 건강한 60세의 망막에 도달하는 빛은 20세 때의 3분의 1에 불과합니다.
이 책에 보면 미국 노인병학계 최고 권위자였던 실버스톤 박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아내가 망막질환으로 시력을 거의 잃자 은퇴를 결심합니다. 하지만 산책 도중 아내가 넘어지면서 종아리뼈가 모두 부서지는 사고를 당합니다. 결국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지요. 그는 전문간호사들이 자신의 아내를 어떻게 다루는지 보고 충격을 받게 됩니다. 누구도 그녀에게 머리를 어떻게 빗겨주면 좋은지, 음식을 어떻게 잘라주면 좋을지 등 취향을 묻지도 않고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요양원에서는 모든 사람들을 똑같은 방식으로 머리를 빗기고,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음식을 똑같은 방식으로 먹입니다. 실버스톤 박사는 그제서야 왜 요양원이 군대훈련소나 감옥과 같은 구조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는 아내를 집으로 데려오기로 결심을 합니다. 집으로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낸지 나흘만에 아내가 세상을 떠나지만, 실버스톤박사는 아내가 평생 지내며 익숙한 공간에서 남편과 대화를 나누고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양원에서는 저녁에 쿠키를 먹거나 밤 늦게 TV를 보거나, 술 한 잔 하는 것 등이 모두 금지된다고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옷을 고르고, 스스로 입는 것보다는 간호사들이 입혀주는 게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율권이란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문득 집에서 아내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해먹고, 술 한 잔 걸치며, 책을 읽고, TV를 보는 소소한 삶을 죽을 때까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받다 죽겠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죽을 때까지 삶에 대한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타의에 의해 술을 마시지 못하고, 케이크도 못먹는 채 조금 더 오래 살기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과 책,일을 삶의 끝까지 즐기는 것이 결국은 잘 죽는 것이고, 또 잘 사는 것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느끼게 됩니다.
결국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맞붙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