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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Mar 06. 2019

앨리스 닐과의 만남

화집을 산다는 것


“(앨리스) 닐이 누군가의 초상화를 그린다는 것은 단순히 겉모습(육체)만을 탐색하는 것(body search)처럼 보이지만 육체와 영혼을 탐색하는 것(body-and-soul search)과 같다.”


1984년 10월 14일자 뉴욕타임즈는 미국의 여성화가로서 진보적이며 페미니즘을 추구했던 앨리스 닐의 부고기사에서 예술비평가인 존 러셀(John Russell)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부고 기사 헤드라인에 ‘초상화가(Portrait Artist)’라는 수식어를 달았던 것처럼 앨리스 닐은 초상화로 유명했던 화가입니다.


저희는 그녀의 존재를 이번 여행에서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헬싱키 시내 중심가의 기차역 바로 건너편에 있는 아테네움(Ateneum)에서 대규모 전시가 열렸는데 다시 한번 전시를 보러갈 만큼 작품들은 흡입력이 있었습니다.


1900년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1984년에 세상을 떠난 앨리스 닐은 노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너무 힘든 삶을 살았고, 그에 대한 댓가를 지불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런 삶을) 원해서 살아왔다”라고. 그녀는 어린 시절 자살을 시도했고, 결혼해서 난 두 딸을 병으로 잃었고, 이혼 후에는 뉴욕에서 사귄 유부남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더 낳기도 했습니다. 비평가들은 그녀를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전형적인 보헤미안이라 불렀습니다. 그녀는 왕성하게 활동하며 당시 남성 위주의 화단 풍토에 도전했고, 페미니즘을 위해 싸우기도 했습니다.


아테네움을 두 번째 방문하여 그녀의 전시를 보고나서 화집을 샀습니다. 사실 화집은 두껍고, 무거우며, 값도 비싼 편이라 많이 사질 않게 됩니다. 제가 처음 산 화집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레오폴드 미술관(에곤 쉴레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관하고 있는 곳)에서 발견한 에곤 쉴레의 것입니다. 두 번째 화집은 스페인 여행 중 구매한 에드워드 호퍼, 그리고 오랫만에 앨리스 닐의 화집을 구매했네요.


만약 전시를 보고 화집을 구매했다면 전시를 볼 때의 감동을 다시 느낄 수도 있고, 화집을 먼저 구매했다면 언젠가 그 원작을 어느 미술관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보다 더 진한 감동을 느낄 수도 있지요. 가끔 화집을 펼치면 뭐랄까 글자가 빽빽한 일반 책과는 다른 눈과 마음의 정화 같은 것이 이루어집니다. 사실 우리 눈은 스마트폰의 수많은 자극적 사진에 노출되어 있지만, 화집의 그림들은 눈과 마음의 피곤함을 씻어준다고 할까요. 책은 안보면 버리게 되지만 보통 화집은 오랜 세월 함께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자신이 직접 고른 마음에 든 화집일 수록 더 그렇지요. 이번 전시에서 만난 그리고 화집을 통해 요즘도 보고 있는 앨리스 닐의 그림 중에 ‘외로움(Loneliness)이라는 1970년 작품이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외로움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의대를 졸업한 아들이 결혼하여 떠난 뒤 공허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아들을 그린 작품이 바로 ‘Hartley’인데 이 작품에서 아들인 하틀리는 두 손을 머리 위로 깍지 낀채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작품들을 보면서 왜 초상화를 많이 그렸을까하고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험한 삶 속에서 외로움을 느꼈던 그녀가 초상화를 그리면서 사람들의 영혼과 접속하고 자신의 외로움을 달랬던 것은 아닐까. 여러분은 화집을 사보신 적이 있습니까? 혹시 평소에 마음에 드는 화가가 있다면 주말과 연휴에 그 화가의 화집을 사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화집을 넘기는 순간만큼은 마음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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