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끗 차이 – ‘발효’와 ‘부패’ 사이

by HER Report

최근 우연히 두 군데에서 ‘발효’란 단어를 발견했다. 아주 흥미로운 맥락 속에서.

최근 HerReport에서 소개했던 책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에 보면 시노다 과장(최근에는 부장이 되었다고)의 독특한 그림 습관을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특별하게 그림 그리기를 배운적도 없고, 학교에서 미술 성적도 좋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림 그리기는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물을 보고 직접 그리지는 못하고 항상 기억에 의존하여 대상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는 대상을 자기 안에서 ‘발효’시킨 뒤에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한 곳은 협업하는 사업 파트너인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김봉수 대표가 그의 회사인 PEAK15 블로그에서 소개하는 ‘발효기사’란 코너에서이다. 그는 “시간을 두고 묵혀두었다 다시 읽어 봐도 여전히 가치가 있는 기사들을 채집/보관하기로” 결심하고 매주 하나씩 ‘발효된’ 기사를 골라서 공유한다.


이처럼 흔한 단어인 ‘발효’를 흥미로운 맥락에서 발견하고 나서는 그 뜻을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발효와 부패는 모두 미생물에 의한 유기물 분해현상으로 동일한 매커니즘이지만, 인간에게 유용한 발효(인간이 먹는 음식의 1/3이 발효음식이라고)와 달리, 유독물질을 생성하는 것을 부패라고 구분한다.


발효와 부패가 동일한 매커니즘이지만, 완전히 다른 방향의 결과물을 낳는다는 것은 상당히 철학적으로 다가왔다. 시노다 과장은 음식에 대한 기억을 발효시켜 훌륭한 그림일기를 20년 넘게 적어왔고, 김봉수 대표는 우리가 휘발성으로 날리는 기사 중에서 발효시킬 만한 기사를 찾아서 제공한다. 음식에 대한 기억과 뉴스 뿐만 그럴까. 똑같이 주어진 시간, 마음, 시선, 종교, 정치적 신념, 언어…에 따라 어떤 것은 발효되고 부패되기도 한다. 난 지금 무엇을 발효시키고 있고, 무엇을 부패시키고 있을까?

https://peak15.co.kr/2017/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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