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샴페인을 만드는 곳은 많지만 좋은 로제 샴페인 만드는 곳은 흔치 않다. 1959년 처음 만들어진 돔 페리뇽 로제, 올해 2005년 빈티지가 나왔다. 로제 샴페인의 성격은 피노 누아가 결정하는데 지구온난화로 예민한 포도 품종인 피노 누아는 더욱 큰 영향을 받아 포도 익는 속도가 빨라지고 탄닌은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고.
돔 페리뇽의 와인메이커 뱅상 샤페롱이 출시를 앞둔 돔 페리뇽 로제 2005 설명을 위해 2003, 2004년 빈티지와 함께 시음을 도와주었다.
“모든 돔 페리뇽 와인은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로 만들어지는데 로제샴페인을 만들 때에는 피노 누아에 더 신경 쓰게 된다. 피노 누아의 핵심과 그 특징을 잘 추출해 그저 색을 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통합적이고 완벽한 맛과 향의 밸런스를 이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궁금한 거 물어보면 바로바로 대답해주는, 아아아, 돔 페리뇽의 샴페인 메이커라니.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직업이다. 나도 다음 생에는 샴페인 메이커로 태어나서 혈관 속에 피 대신 샴페인이 흐르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
로제 2005는 구아바와 커리 잎 같은 열대 향이 느껴졌다가 감귤류 껍질과 잘 익은 핵과류의 고전적인 향이 퍼지고 마지막으로 코코아와 스파이스 향이 전체적인 조화를 완성시켜주었다… 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 정도로 후각과 미각이 예민하지 않으니 샤페롱의 도움으로 이해. 예민하지 않은 감각 탓에 세련된 평가자나 감식자의 길은 아예 텃다고 봐야 한다. 그래도 기분 좋은 꽃향에 살짝 크리미한 뒷맛, 길게 가는 여운 정도는 느끼겠다. 어차피 설명은 전문가들이 잘 해줄 것이고, 나는 그냥 마셔서 맛있으면 그것으로 충분.
좋은 술은 좋은 음식과 함께 한다. 한식과도 잘 어울리는지 실험하기 위해 무화과와 유자 처트니 올린 푸아그라구이, 한식 소스 이용한 가리비 구이, 간장 뱅블랑 소스를 올린 가자미, 채소구이 곁들인 한우 채끝등심, 각종 나물과 메추리알 사용한 비빔밥을 조금씩 먹으며 함께 시음을 했다. 복잡한 음식들이 여러가지 나오고 이런저런 와인 다 시키기 힘들 때에는 로제 샴페인을 곁들이자고 말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친구들에게 “로제 샴페인 가격이 얼마인데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고 혼날 듯하다.
인생도 그렇겠지만 돔 페리뇽의 미학적인 목표는’ 복잡한 요소들의 조화를 이루어 가장 숭고한 감정을 찾아내는 것’이란다.
“럭셔리는 사람들이 지닌 꿈의 상징, 문화이자 문명이다. 고양된 영적, 미적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럭셔리다.”
아주 가끔 누리는 럭셔리로의 샴페인. 향도 좋고 맛도 좋고 색깔마저 아름다운 돔 페리뇽 로제 2005는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가격만 제외한다면. 우아한 시도는 왜 항상 극히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고민으로 끝나게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