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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Mar 09. 2019

보두네 신부 평생의 역작이자 호남의 모태 본당

전주 전동성당


이번 전주 출장 중 가장 매력적인 건축물은 전동성당이었습니다. 둘째날 아침 일찍 호텔 근처에 있는 전동성당을 둘러보았는데 아쉽게도 미사시간 이외에는 문을 닫아 놓아서 내부를 볼 수 없었습니다. 지나가던 수녀님께 내부를 볼 수 없는지 여쭤보았으나 거절… 전주에 다시 오라는 뜻으로 알고 외부를 천천히 둘러보았습니다.


전주의 한옥들이 너무 새 것이어서 살짝 실망했다면, 이 성당은 웅장한 모습에 역사의 켜와 여운이 느껴져서 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벽돌 하나하나에 역사를 담은 채 묵묵히 있는 모습이랄까요… 서울에 돌아와 전동성당 홈페이지와 관련자료들을 살펴보면서 더욱 매력을 느꼈습니다.


파리외방전교회 보두네(Fr. Baudounet. François Xavier, 한국명 윤사물 尹沙勿, 1859-1915) 신부는 프랑스 아베롱 지방에서 1859년에 출생했습니다. 스물 다섯살이 되던 1884년 가톨릭 사제로 서품을 받고는 이듬해인 1885년 한국에 입국하게 됩니다. 서른이 되던 1889년 전주본당에 부임하지만 당시 전주가 개항지가 아니었고 전라도 감영이 전주에 있었기 때문에 보두네 신부는 전주로 바로 들어오지 못하고 전주 근교인 대성리에서 마물다가 1891년 봄에야 현재 전동성당의 자리(전주 완산구 전동 200-1)에서 전교를 시작합니다.


마흔 아홉살이던 1908년 성당건축을 시작하는데 설계는 서울 명동성당 내부공사를 마무리했던 프와넬 신부가 했다고 합니다. 당시 벽돌은 중국인 인부 100여 명이 직접 구웠다고 합니다. 이 자리는 1791년 한국교회 최초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순교한 현장이기도 합니다. 호남 최대 부자였으면서 호남의 첫 가톨릭 신자였던 유항검이 1801년 신유박해 때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풍남문 밖에서 능지처참형을 받았는데 1909년 전주부의 허가를 받아 이 풍남문 밖 성벽돌을 주춧돌로 썼다고 합니다.


외형공사를 마친 것이 1914년, 이듬해인 1915년 보두네 신부는 56세로 선종(善終)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내부 공사가 계속 되어 완공이 이루어진 것은 성당 건축을 시작한지 23년만인 1931년입니다. 한국 전쟁 때는 인민군이 전동성당을 점령 전라북도 인민위원회 및 차량 정비소와 보급 창고로 사용하기도 했고, 1980년대에는 전라북도 지역의 민주화의 성지로도 이름을 날렸습니다.


외부를 둘러보면서 이 성당 내부를 미사가 없는 때에도 개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아름다운 성당을 둘러 볼 수 있고 신자들이 방문해 혼자서 조용히 기도하다가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 있어서이죠. 오래 전 원인 모를 화재가 나기도 하고 밀려오는 관광객으로 성당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외부만이라도 이렇게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은 제겐 큰 행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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