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몇 가지 있다.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극지방이나 남미 이과수폭포 같은 곳. 여기에 하나 더 넣는다면 사막이었다. 지평선에 이르기까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모래언덕인 곳에 서보면 어떤 느낌일까.
두바이에서 브랜드 런칭 행사를 하며 곳곳에서 온 기자들을 위해 사막 한 가운데에서 저녁식사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호텔에서 한 시간 정도 차로 나가서 사막에 도착한 후 다시 사륜구동차로 갈아타고 한참 들어가는 길. 그저 눈 닿는 곳이 모두 모래벌판, 모래언덕이다. 이렇게 당황스러운 풍경은 처음이었다. 바람이 크게 한번 불어오면 모든 흔적이 다 지워지고 길도, 표식도 없는데 어디로 어떻게 가나. 운전사는 문제없다고 어깨를 한번 들썩 하더니 시동을 걸었다. 하긴. 요즘은 GPS와 휴대전화가 있으니. 멀미취약 체질인 나에게 계속 요동을 치며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반복하고 엄청난 코너링을 연발하는 ‘듄 베이싱(곡예운전)’ 경험이라니. 이러다 차가 뒤집어지는 거 아닌가, 타국 모래벌판에서 사고 당하는 건가 걱정이 들어서 멀미조차 잊어버렸을 무렵 도착한 곳 역시 그저 또 모래벌판.
유목민의 드럼 연주를 듣다가 따라하기도 하고 한쪽에 차려진 음료를 마시는데 모랫바람이 계속 불어와 눈과 귀와 코와 입으로 들어온다. 하얀 테이블클로스와 음식 덜어먹을 접시와 커틀러리 위에 쌓인 모래를 연신 닦아내다 맘 편히 포기하고 그냥 모래까지 먹고 마시기로. 아랍식 빵인 ‘칵’이 후무스와 함께 나왔다. 쿠스쿠스, 샐러드, 사모사 등이 나오고 스테이크와 초컬릿 케이크로 이어진 식사는 사막에서 준비해야 하는 만큼 소박하고 간단하며 군더더기 없어서 더 맛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해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하늘과 맞닿은 사막을 보는 것만으로 감동이었다. 발을 내디디면 모래 속으로 푹푹 빠져서 이러다 내 존재 자체가 홀연히 사라지는 것 아닐까 의심이 드는 사막 한 가운데. 막막하기도 하고 심란하기도, 좋기도 아름답기도 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남은 한쪽은 휴전선으로 막혀 어찌 보면 대륙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환경이니“넓은 광야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다”거나 “지평선 너머 점이 될 때까지 걸어갔다”는 소설 속 설명을 경험할 수는 없다. 사막에서라면 걷고 또 걷고 달리고 또 달려 사람들 눈과 기억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24시간 온갖 불빛으로 환한 도시에 있다가 이렇게 어둠과 고립을 살짝 경험하고 나니 GPS 없는 오래 전 별과 달에 의지해 이 사막을 가로질러 다녔던 유목민들이 얼마나 용감하고 현명했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벤트나 관광의 배경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사막에 혼자 있게 된다면 어떨 것인가. 다시 사막에 와볼 수 있을까. 미니멀의 극치, 간결함의 정점 같은 사막. 기껏 너댓 시간 있어본 걸로 대단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겠지만 운좋게 버킷 리스트 하나는 지운 셈이고 더 운이 좋다면 다음 번에는 사막을 좀더 제대로 경험하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