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프 한 그릇으로 사람들의 위장과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자!
레스토랑_도쿄
혹시라도 작은 가게를 내게 된다면 무엇이 좋을까 10여년 전 뜬금없이 상상했던 적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음식을 뚝딱 만들어 낼 만큼 솜씨가 좋은 것이 아니니 간단한 걸로 한 가지만 해보자… 생각하다가 제가 좋아하기도 하고 바쁜 사람들에게 필요할 것 같아서 혼자 맘 속에서 결정한 것이 수프집이었답니다. 매일 종류를 바꿔가며 서너 종류 맛있는 수프를 만들고 밥이나 빵을 함께 제공해 위장과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아주 작은 가게. 마감이 닥치면 깜빡 잊어버리고 마감 끝나면 다시 생각하기를 반복하며 계획 무산.
그런데 일본에서는 1999년 ‘수프 스톡 도쿄’가 문을 엽니다. “도쿄 시내 한 가운데서 일하는 여성이 맘 편하게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네요. 계절에 맞게 매주 수프 메뉴를 바꾸고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아 0세부터 100세까지 먹을 수 있게 한 컨셉이 성공을 거둬 벌써 일본 전역에 70개나 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테이크아웃도 되고 온라인샵에서도 판매합니다.
40시간이 채 못되는 짧은 출장, 정신없는 일정에 첫 끼를 해결하러 오랜만에 긴자도큐플라자 ‘수프 스톡 도쿄’를 찾아갔습니다. 세트 종류를 고르고 수프 종류를 고르고 밥이나 빵을 고르고 수프와 밥 양을 고르고 드링크를 고르고 헉헉헉. 고르다 배고파서 쓰러질 뻔했네요. 제가 고른 커리라이스와 수프, 음료 세트는 1200엔 정도였습니다. 양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 적은 편도 아니고 깔끔하고 단정한 맛입니다.
지역 농부들을 돕기 위해 가능한 재료는 일본산, 매장 인테리어에 사용하는 목재도 모두 일본산이라고 홍보합니다. ‘반 고흐의 양파수프’ 처럼 영화나 음악,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메뉴를 만들고 스토리를 입힌답니다. 메뉴는 다국적입니다. 동구의 보르시치, 이탈리아 미네스트로네 등이 메뉴에 들어있는데 반갑게도 한국식 수프가 제일 많아서 아예 ‘감자탕’, ‘육개장’ ‘한국식 죽’이라고 표기해놓았어요.
수프를 만들 때는 ‘작품성’을 우선하는데, 어떻게 재료를 넣고 어떻게 담아야 아름다운지, 레몬 조각을 꽂는 가장 예쁜 각도를 찾아낸답니다. ㅠㅠ 알레르기 있는 사람들을 위해 원재료를 밝히는 것은 물론 산지도 표기하고 전직원에게 알레르기에 관한 교육을 시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수프집 안하기 잘했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철저히 사업하는 곳도 있는데 별 생각 없는 제가 했다간 바로 망했을 것 같네요. 역시 저는 그냥 여기저기 다니며 많이 먹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