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지역사회를 위한 열린 미술관
HER travel_가나자와
가나자와에 처음 왔던 것은 2005년 1월, 2004년 10월 개관해 화제가 된 21세기 미술관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지금이야 미술관이나 박물관, 공연장 등을 통해 지역을 개발한 사례가 워낙 많지만 그때만 해도 새로운 시도라 큰 화제가 되었다. 이 미술관 덕에 일본의 작은 도시 가나자와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고 설계를 맡은 젊은 건축가 듀오 SANAA(세지마 가즈요+니시자와 류에)는 단번에 유명해졌다.
지름이 113 미터의 투명 유리로 둥글게 둘러 쌓인 미술관 안에는 다양한 크기의 사각형 전시 공간이 엇갈려 자리잡았는데 곳곳에 중정이 만들어져 채광에 도움을 준다. 상설전시작품 중 유명한 것은 아르헨티나 작가 레안드로 에를레히(Leandro Erlich)의 ‘Swimming Pool’. 10센티미터 정도 차있는 물이 밖에 서있는 사람과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 모두에게 완벽한 착시 효과를 선사한다. 이 작품을 여기 설치했을 때 그의 나이가 서른 정도였어서 놀랐던 기억이 남아있다.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아니시 카푸어의 작품은 검은색 타원을 열심히 쳐다볼수록 환영을 보게되는 묘한 작품.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하늘 연작’이라 할 수 있는 ‘Blue Planet Sky’는 천장 가운데 뚫린 직사각형 하늘이 시간에 따라 변하는 모습이 그대로 작품이 된다(나오시마 지중미술관과 원주의 뮤지엄 산에서 터렐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건물 밖 올라프 엘리아슨의 ‘Colour Activity House’는 구부러진 색색의 유리판이 겹쳐지며 만들어낸 색깔이 아름답다. 디자인이나 인쇄 쪽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CMYK의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진다고 할까… 이 작품들 모두 “보이는 대로 믿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이 일대에서 보기 힘든 현대미술 전용 공간이지만 세계적인 작가만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지하의 전시장과 세미나실에서는 가나자와 아트디렉터스 어워드 수상작 전시가 열리고 시민들이 찍은 풍경사진전도 열린다. 가나자와성과 겐로쿠엔이 가까이 있어서 지역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자주 오가고 편하게 모이는 장소가 되도록 금토요일은 늦게까지 문을 열고 출입구도 여러 곳으로 편하게 만들었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고 봄가을에는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 특징상 오가다 눈비를 만나면 잠시 들어가 쉬기에도 적당하다.
지난 15년 동안 이 미술관은 지역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고 SANAA 역시 프리츠커상을 타며 세계적인 중견 건축가가 되었고. 가나자와는 신칸센으로 도쿄와 바로 연결되어 예전보다 붐비는 도시가 된 것을 확인했고. 다시 오니 별별 생각 다 드는 가나자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