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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Aug 22. 2018

여름의 맛, 어른의 맛, 가지의 맛

여름이면 가지를 먹는다. 중국집에 가면 어향가지를 시키고 스페인 여행 동안에는 둥글게 잘라 바삭하게 튀겨낸 가지를 먹었다. 교토에서는 이 지역 특유의 ‘카모나스’에 갖가지 된장을 발라 굽는 ‘나스 덴카쿠’를 자주 먹는다. 불에 구워 껍질을 벗겨내고 맛국물에 차게 담가먹기도 한다. 집에서는 반찬으로 가지나물을 무치고 가지냉국을 만든다. 이렇게 가지가 좋아진 건 요즘 들어서다. 물컹거리고 흐물거려 예전에는 거들떠 보지 않던 가지.
어려서 외할머니는 여름이 되면 뜰에서 키우던 가지를 몇 개 따와 밥할 때 살짝 쪄서 가지나물을 해주셨다. 그때는 이걸 무슨 맛으로 먹나 싶었는데 그때마다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나중에 나중에 크면 알게 된다, 가지가 얼마나 맛있는지.”

할머니 말대로였다.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우며  순한데 어떤 양념이건 잘 흡수해 금새 그 맛을 품어낸다. 진한 보라색은 눈을 즐겁게 만들어 준다. 무르고 상처도 잘 나지만 말려 놓으면 겨울까지 먹을 수 있을 만큼 강단있다. 가뜩이나 뭐든지 잘 먹는데 이제 가지마저 맛있어지고 좋아지다니...

“싸게 줄테니 가져가요. 가지가 너무 많이 남았네” 하는 동네 수퍼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2000원에 가지 다섯 개를 들고 왔다. 씻어서 적당히 잘라 칼집을 내고 살짝 쪄서 식힌 후 파, 마늘 아주 약간에 간장과 매실액 약간, 식초 잔뜩 넣어 새콤한 가지 무침 완성. 그런데 옛날 할머니가 해주셨던 그 맛은 아니다. 뭐가 빠진 걸까. 할머니 손맛을 기억하고 물려받은(것으로 추정되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할머니가 옛날에 가지 무침 어떻게 하셨지?”

“야! 이런 날씨에 음식하는 거 아냐! 그냥 대충 나가서 사먹고, 더운데 전화 끊어!”
인생을 늘 ‘직구’로 사시는 엄마, 내가 기대한 ‘여름 가지의 추억’ 결말은 이게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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