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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Jun 24. 2019

가장 오래된 친구와의 첫 해외여행

교토 3박 4일 여행

1978년에 같은 반에서 둘이서 일 년 동안 함께 공부했거나 놀았다는 점은 확실하다.

둘 다 기억하고 있고, 더군다나 당시 담임선생님도 여전히 우리 둘을 기억하고 계시니까. 기억에서 차이가 나는 한 가지는 우리가 1976년에도 같은 반이었다는 부분이다. 내 기억에는 없는데 친구의 기억에는 있다. 

어쨌든 강희는 내게 가장 오래된 친구이고 또 특별한 친구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강희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강희는 그에 대한 답장을 고등학교에 들어갈 즈음에 내게 보냈다. 이번에 물어보니, 방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내 편지를 발견했고, 그에 대한 답장을 쓴 것이라고. 


둘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지만, 고등학교는 다른 곳에 다니게 되었다. 암튼 그렇게 다시 이어진 편지가 인연이 되어 우리는 고등학교 내내 편지를 주고받았다. 주로 종이에 연필로 쓴 편지로 기억한다. 방학이 되면 둘은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사고 영화도 보고 다시 헤어지곤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둘 다 연애하느라 더 이상 편지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지금까지 얼굴을 보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친구이다. 둘이 올해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같이 가기로 했다. 

2시간 떨어진 교토로.  


40년 된 친구이지만, 3박 4일을 함께 보내는 것은 처음이어서 어떻게 여행을 함께 할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일단 방은 2개를 잡아서 저녁에 잠을 자고, 가족과 통화를 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은 각자 갖기로 했다. 

오전 9시에서 오후 9시까지는 거의 함께 다녔다. 하지만, 서점이나 전시 등에서 관심사와 보는 속도는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각자 자유롭게 보고, 다시 만나곤 했다.


일본의 보물 일호이자 한국의 장인이 만든 반가사유상 고류지, 석정이 있는 료안지, 재일 교포 정조문 선생이 만든 고려박물관, 교토국립박물관의 잇펜 스님(1239-1289) 특별전도 보고, Craft Kyoto, Kyoto Brewing Company 등에서 매일 같이 술을 마셨다. 


함께 본 것 중에서 내게 가장 좋았던 것은 잇펜 스님 특별전이었는데, 일본 전국을 떠돌이처럼 돌면서 일반인들이 삶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했던 장면들은 인상적이었다. 불교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친구가 아니었다면 나로서는 그냥 지나쳤을 전시이기도 했다. 또한 친구에 대해 새로운 점을 알게 되었다. 친구가 중국음식을 좋아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크래프트 맥주를 이렇게 좋아하는지는 여행을 함께 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친구와의 여행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깊은 대화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가장 오래된 친구와 함께 새벽 4시에 만나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교토에서 하루 12시간씩 붙어 다니며 맛있는 것을 먹고, 구경을 하며 느낌과 생각을 주고받고 한 것 자체가 내게는 기억에 남을 경험이었다. 

어쩌면 이번 해외여행은 우리 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40년 만에 처음 가게 되었고, 함께 시간을 맞추어 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40년 넘게 본 친구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이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친구는 내가 보지 못하는 면을 새롭게 보게 해주는 사람이란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인자하면서도 살짝 샐쭉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반가사유상 앞에 앉아 강희도 나도 지난 40여 년 보다 앞으로 더 좋은 일들이 많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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