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여행#1 MoPOP
[HER travel : 미국 시애틀 대중문화박물관, MoPOP]
다시 태어난다면 롤링스톤즈의 믹 재거로 태어날 예정이었는데 이번 시애틀 여행을 계기로 꿈이 바뀌었다. 다음 생에 나는 폴 앨런으로 태어날 것이다.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그 폴 앨런 말이다.
시애틀에 있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곳곳에 폴 앨런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미식축구팀인 시애틀 시호크스의 구단주였고 NBA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구단주였으며 축구팀인 시애틀 사운더스의 공동 구단주였다. 워싱턴대학의 도서관과 공과대학에도 거액을 기부했다. 65세로 일찍 세상을 뜬 것 말고는 완벽하게 다 부럽다(그는 2018년 림프암으로 사망했다).
시애틀의 대중문화박물관인 MOPOP(Museum of Pop Culture)도 그의 작품이다. 원래는 Experience the Music Project라는 이름을 시작한 공간인데 기획과 전시의 폭을 넓히며 2016년부터 대중문화박물관으로 리브랜딩을 했다. 시애틀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이곳에 가는 것이었다.
지미 헨드릭스와 너바나와 프린스, 펄 잼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니 나의 시애틀 여행에 신의 가호가 함께 한 것이 틀림없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작품인데 폴 앨런의 의뢰로 설계를 시작할 때 전자 기타 몇 대를 사서 분해해보았다고 한다. 게리의 특징대로 구불거리는 라인이 멀리서도 눈에 들어온다. 골드, 실버, 진한 핑크, 하늘색이라는, 참 독특한 조합의 외관이다. 음악이 지닌 에너지와 유동성을 표현하기 위해 2만 1천 장 스테인레스 패널을 이어 붙여 만들었다.
날씨와 햇빛에 따라, 바라보는 앵글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내는 것이 특징인데 솔직히 구겐하임 빌바오나 디즈니센터 같은 그의 전작처럼 매력 있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좀 정신없기는 하다. <포브스>에서는 이 건물을 ‘세상에서 가장 흉측한 10대 건물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전시 역시 엄청나게 고급스럽다거나 심오하다기보다 캐주얼하고 편안한, 대중을 위한 것들로 구성된다. 대중음악, SF소설과 영화, 게임, 패션 등에 관련해 다양한 전시를 소개하는데 그중 대중음악 관련한 비중이 높다. 왜냐, 폴 앨런이 음악광이기 때문이다.
기타광이기도 한 그는 유명 기타리스트의 기타를 수집해왔는데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는 물론이고 머디 워터스, 스티브 레이 본, 하트의 앤 윌슨, 행크 윌리엄스 등의 기타 20 여 대를 수집해 MOPOP에 ‘Guitar Gallery’를 만들어 상설 전시해놓고 있다.
이곳의 상징 역시 500여 대의 기타와 30대의 컴퓨터로 만든 설치 작품 ‘IF VI WAS IX’.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바로 시애틀 출신이고 얼터너티브 록의 우상인 너바나 역시 이 지역 출신이라 자주 전시가 열린다. 기타리스트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던 1966년부터 갑작스럽게 사망한 1970년까지 평생 한 도시에 한 달 이상 머문 적 없던 지미 헨드릭스의 생애를 소개한 ‘Wild Blue Angel; Hendrix Abroad 1966-1970’, 온통 보라색으로 꾸며진 프린스 생전에 촬영한 사진과 다양한 작가들이 프린스에게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을 전시했고 그의 음악이 내내 흘러나오는 ‘Prince From Minneapolis’, 너바나 결성 초기부터의 음악적인 궤적을 따라가는 ‘Nirvana; Taking Punk to the Masses’, 얼터너티브 록의 또 다른 대표였던 펄 잼의 200여 점의 전시물로 구성한 ‘Pearl Jam; Home and Away’ 등이 이어진다.
각각의 전시는 엄청나게 대규모도 아니고 엄청나게 독특한 구성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이들을 좋아한 팬들에게는 그냥 지나쳐 가기 어려운, 추억과 향수를 다시 한번 불러일으킨다.
‘Sound Lab’는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 보컬 등을 연습할 수 있고 믹싱과 잼을 시도해볼 수 있는 미니 스튜디오로 이루어져서 음악을 듣는 것뿐 아니라 직접 경험해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SF Hall of Fame에는 유명 SF 영화에 등장하는 각종 소품과 관련 작품들을 모아놓았는데 이 전시물 상당수는 역시 폴 앨런과 그 가족의 수집품이라고 한다.
부러운 사람! 이걸 언제 다 사 모았을까 싶어 감탄만 했다. 성공한 진성 덕후가 이룩한 결과물의 집합체가 바로 이 박물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