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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Jul 23. 2019

오이스터 바 '월루스&카펜터'

시애틀 여행 #9  가장 신선한 굴을 종류별로 맛볼 수 있는 곳

[시애틀,  'the Walrus and the Carpenter']


바다를 끼고 있는 시애틀이나 당연히 해산물을 먹어야 하는데, 관광객들 많이 오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내의 해산물 레스토랑들은 다 비슷비슷해서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우버를 불러 타고 호텔에서 소개해 '월루스&카펜터(the Walrus and the Carpenter)'로 향했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가져온 이름임이 분명하다). 


굴을 좋아한다면 주중 4시부터 6시 한정으로 진행하는 '오이스터 해피 아워'에 맞춰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서둘러 떠났는데 좀 일찍 도착한 듯해서 주위의 작은 상점들을 구경했다. 완전히 여유 잡고 갔는데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것 같아 마음 놓고 있는데 뭔가 좀 이상한 느낌.... 아니나 다를까, 레스토랑은 길고 어두운 복도를 한참 들어가야 나왔고 그 앞에는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오픈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단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로군.  


2010년 시애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셰프 중 한 명인 르네 에릭슨(Renee Erickson)이 친구 제러미 프라이스(Jeremy Price), 채드 데일(Chad Dale)와 함께 만든 곳인데 '뒷마당의 오이스터 바'를 컨셉으로 했다고 한다. 이 레스토랑은 그 가족과 친구들의 손길도 곳곳에 닿아 있다. 각종 캐비넷과 가구는 제러미의 아버지가 만들었고 르네의 아버지와 남자형제는 파티오 벽돌 공사를 맡았으며 르네의 친구는 앤티크 시장을 다니며 이 레스토랑에 어울릴 샹들리에와 소품을 구해왔다고 한다.


음식과 술은 맛있고 분위기는 편안하고. 오픈 첫 타임으로 손님이 가득차서 일제히 주문을 하다 보니 레스토랑 안이 아주 시끄럽고 좋다. "R이 들어가지 않는 달은 굴을 먹지 말라... "는 무슨. 몇 년 전 한 여름 노르망디 여행길,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이런 말을 했다가 주인으로부터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임?" 하는 반응에 놀랐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6월말인데 굴을 먹는다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먹어야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먹어야 한다. 굴의 종류와 공급자, 산지가 상세하게 적혀 있는 메뉴판을 내밀며 웨이터가 "어느 굴을 먹을래?" 한다. 어느 굴이라니, 당연히 모든 굴이지, 우리를 어떻게 보는 거야.


철망마다 얼음이 가득 담겨 있고 그 안에 신선한 굴들이 종류별로 들어 있다. 주문을 받으면 앳띤 청년이 잠시도 쉬지 않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굴껍질을 까서 얼음 채운 트레이에 담아 올려준다. 일인당 7종류를 모두 시켰더니 굴의 이름을 아예 메모해서 전해준다. 

품종과 서식지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른데 달큰한 맛부터 점점 더 짭짤한 맛을 내는 순서로 세팅이 되어 있다. 라이브레드와 함께 먹으면 좋다고 하는데, 내가 아무리 탄수화물을 좋아하지만 빵으로 배 채울 상황이 아니다(이 빵은 시울프 베이커리에서 공급한다). 이렇게 맛있는 굴에는 무조건 샴페인을 곁들여야 한다. 독특한 바다향에 크리미한 질감이 어울려 한 판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두번 째는 채소요리. 먹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원래 '풀때기'는 안 시키려 했는데 웨이터가 '스프링 어니온'은 요즘만 먹을 수 있는 시그너처 요리라 꼭 먹어봐야 한다고 추천해서 별 기대 없이 주문했는데, 내가 아는 그 양파가 아니다. 양파와 양파대를 함께 조리해주는데 구워서 살짝 알싸하고 달콤한 양파와 향긋한 양파대의 맛이 감동스럽다.

메인은 통채로 튀긴 대구 아가미 부위였다. 별다른 조리 없이 정말 뜨끈뜨끈한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바로 튀겨서 타르타르소스에 구운 레몬만 곁들인 채 나왔는데 레몬을 쭉 싸서 뿌리고 살을 발라 먹으니 완전 신세계! 최근 먹어본 그 어떤 생선보다 맛있었다.

하도 감탄을 하며 살을 발라 먹으니 옆 자리 손님이 메뉴를 보여주며 "이 중에서 무얼 시킨 거니?" 하고 물어와서 알려주었다. 그 친구들이 먹는 음식도 맛있어 보이기에 물었더니 토마토와 처빌, 펀넬 등을 넣고 찐 조개라며 "좀 짠 편이야!" 하고 알려준다. 미국 사람들이 짜다고 하면 진짜 짠 것이니 시키지 말아야지. 


원래는 정어리나 다른 생선요리를 하나 더 먹으려고 했는데 굴 맛이 도무지 잊혀지지 않아서 굴 프라이를 시켰다. 고수가 잔뜩 들어간 아이올리에 푹 찍어 먹는데 두툼하고 부드러운 굴이 입안에서 확 퍼지는 느낌이다. 

양이 많아서 다른 음식 시킬 수 없을 만큼 배가 불러 버리고 말았다. 왜 이곳을 '레스토랑'보다 '오이스터 바'라고 부르는 지 알 것 같았다.


예약을 받지 않는 바람에 늘 줄이 길게 서 있는데 자리에 여유가 있으면 인터넷 '오픈 테이블' 공지가 뜬다. 이걸 기다릴 수 없으니 그냥 3시 반까지 도착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해피 아워에는 굴이 반값, 칵테일은 1달러 할인이니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아낀 돈으로 많이 먹어야지, 암!
4743 BALLARD AVE N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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