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역사를 지닌 미국 남부 '소울 푸드' 레스토랑

시애틀 여행 #12  준 베이비

[시애틀,  'June Baby']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소울푸드'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국 남부의 음식을 말한다. 단지 남부의 음식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노예제도의 잔혹한 고통을 이겨내도록 해준 음식을 지칭하기도 한다. 

아프리카 서부에서 미국으로 끌려온 흑인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함께 가져왔고 미국 남부에 남아있던 유럽의 전통과 함께 독특한 식문화를 구축하게 되었다. 남부 음식의 대부분은 슬픈 역사에서 나온 부산물이다. 노예들이 일하다 빨리 밥을 먹기 위해 등장한 것이 콘브래드나 휘트 번, 비스킷이었고 돼지와 소를 도축하면 좋은 부분은 부자나 백인들이 먹고 흑인노예들은 내장이나 소꼬리, 돼지귀, 족발 등 남은 부분으로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옥수수와 쌀, 콩과 돼지 등을 자주 이용하는데 세련되지 못하고 건강에도 좋지 않은 거친 음식이라고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소박하지만 진하고 풍부한 맛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재조명을 받고 있다.  

2017년 4월 문을 연 '준 베이비(June Baby)'는 미국 레스토랑들이 '미슐랭 스타'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제임스 비어드' 상에서 2018년 '북서부 최고의 셰프', '새로 오픈한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두 부분에서 선정된 에두아르도 조던 셰프의 레스토랑이다. 

예약을 받지 않고 워크 인으로 이루어지는데 그럼에도 방문 당일 미리 한번 전화를 해서 웨이팅이 어느 정도 되는지 가늠해보라는 것이 팔리호텔의 조언이었다. 줄이 좀 길다고 해도, 기다려서 꼭 음식을 먹어보라는 이야기를 덧붙여서 말이다.

그리 크지 않은 이 레스토랑은 무척이나 캐주얼한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면으로 바가 자리잡고 있다. 칵테일을 하나씩 시킨 후 본격적인 메뉴 공부를 시작했다. 비스킷과 콘브래드 사이에서 한참 고민하다 오래 전 KFC가 처음 들어왔을 때 먹고 감동했던 '비스킷'의 제대로 된 맛을 보겠다는 의지로 비스킷 선택. 방금 구워서 뜨끈하게 나온 비스킷은 버터밀크 덕에 풍부하고 진한 맛이 감동적이다. 여기에 사탕수수시럽을 주르르 부어 먹는다.

남부음식을 하는 곳이니 돼지부속물을 먹지 않을 수 없다. 초록딸기와 절인 펜넬을 곁들여 내는 '돼지귀튀김'은, 이름이나 주재료를 모르고 먹었다면 이무런 부담 없는 맛있는 음식이다. 이름 때문에 고개를 젓고 맛보지 않는다면, 너무나 아쉬운 일이니 꼭 한번 시도해 보시길. 한없이 맥주를 부르는 아주 좋은 술안주, 스낵이다. 

스타터로는 이 집의 인기 메뉴인 스모크 캐럿. 손가락 정도 굵기의 달착지근한 당근을 숯불에 구워 나온다. 여기에 수프로는 당연히 '검보'. 근대 비슷한 잎채소인 콜라드 그린(collard green)과 오크라를 푹 끓이고 잘 구운 새우를 얹어주는데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니 다시 맹렬하게 식욕이 불타오르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매일 다른 지역, 다른 품종의 쌀에 매일 다른 소스를 얹어 나오는 'Southern Rice', 남부식 쌀요리를 선보이니 안 먹을 수 없다. 

메인은 쇠꼬리찜. 우리나라 갈비찜과 거의 비슷한 맛인데 모렐 버섯을 얹어 향을 더했다. 디저트는 딸기아이스크림 치즈 케이크 샌드위치. 한 끼로 충분하게 엄청나게 두툼한 치즈케이크아이스크림을 역시 두툼한 쿠키 사이에 끼워주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이곳의 진가를 확인하려면 일주일에 딱 한 번, 일요일 저녁식사 때 나오는 전통 남부식 프라이드 치킨을 맛보아야 한단다. 그런데 손님이 너무 많고 인기 있는 메뉴라 바로 떨어진다고. 이 프라이드 치킨을 맛보는 꿀팁 하나. 

일요일 오후 3시부터 5시 사이는 '문샤인 아워(Moonshine Hour)'라 부르는데, 간단한 스낵과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일종의 해피 아워다. 이 때 방문해 자리를 잡고 있다가 문샤인 아워가 끝나고 디너를 시작하면 바로 치킨을 넉넉하게 주문하는 것이다. 

한 시간 만에 준비해 놓은 물량이 모두 떨어지니 먹다가 맛있으면 추가 주문하지... 하는 순진한 생각은 하지 말라고!  2122 Northeast 65th Stre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