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여행 #14 아레나 투어에서 소극장 공연으로
6월: 24일 산호세, 26일 뱅쿠버, 28일 타코마, 29일 포틀랜드;
7월: 3일 네쉬빌, 5일 아틀란타, 7일 탬파, 9일 선라이즈, 11일 워싱턴 DC, 13일 필라델피아, 16일 뉴아크, 18일 토론토, 20일 디트로이트...
ELO의 리더였던 71세 제프 린의 공연 스케쥴을 보면 믿기 힘들 정도다. 거의 이틀 간격으로 빽빽히 짜여져 있다. 그것도 나라와 도시를 옮겨가면서 말이다. 영화 <라라랜드>에서도 재즈 피아니스트인 남자 주인공이 밴드에 합류하면서 여러 도시에서 공연을 나서게 되고, 그러면서 여자친구와는 자주 만나기 힘든 장면을 볼 수 있다. 인기가 많아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투어 공연을 하게 되고, 그래서 안정된 생활을 하기 힘든 것은 수퍼스타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제프 린이 공연한 타코마 돔은 17,000명(농구일 경우)에서 2만명(실내 축구)을 수용하는 공간이다. 무대 앞좌석에서야 제프 린을 또렷이 볼 수 있었지만(그나마도 제프 린이 등장하자마자 거의 모든 사람이 일어나서 내내 공연을 관람한다), 경기장 뒷편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벽면에 전시된 스크린을 통해서나 그의 음악을 듣고 즐긴다. U2가 12월에 공연하게 될 고척 스카이돔 역시 1만 6천명 정도 수용하니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이런 빅스타들은 앞으로도 대규모 돔이나 스타디움 공연만을 고집하게 될까? 지난 6월 19일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빅스타 가수들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될지도 모르는 공연 스타일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아티스트들은 돔이나 스타디움 공연을 하면서 비교적 부담이 적은 좌석에서 비싼 좌석까지 가격에 차등을 둔다. 자신의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소위 '빅쇼'를 진행할 수 있는 가수들은 자신들의 이미지 때문에 티켓에 제시된 가격은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하고, 대신 프로모터들은 재판매하는 2차 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판매하여 이윤을 챙기는 동시에 아티스트의 높은 출연료를 감당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런 트렌드와 조금 다른 행보를 취한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파이낸셜 타임즈> 관련 기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2017년 10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14개월에 걸쳐 뉴욕 맨하탄의 월터 커 시어터(Walter Kerr Theatre)에서 236회에 걸쳐 쇼를 진행했다. 쇼 한 번에 입장객은 975명으로 한정된다. 3시간에 걸친 쇼에서 그는 15곡정도를 부르고, 자서전에 담은 이야기들을 한다. 기타와 피아노 그리고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래로 단순하게 꾸려졌다고 한다. 이 정도의 세팅에서는 모두가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음악을 가까이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극장 공연은 라이브 앨범과 넷플릭스 프로그램으로도 소개되었다.
이러한 공연은 아티스트가 여러 나라와 도시로 투어를 돌지 않고 한 곳에서 장기간 공연을 함으로써 사람들을 불러 모으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표 가격은 얼마였을까? 평균 무려 505불이었다 (물론 75불에서 850불까지 다양했지만 말이다; 동시에 리셀러에서 가격은 1,800불에서 6,700불까지 올랐다고 한다).
<파이낸셜 타임즈>와 인터뷰한 팀 잉햄(Tim Ingham, Music Business Worldwide 창업자)은 스타디움이나 돔 공연이 아닌 비교적 소규모 극장 공연의 의미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이러한 극장 공연이 직접 노래를 만들고, 악기를 연주하고 직접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면모를 재조명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본 제프 린의 공연에서도 그는 가끔 손을 들어 인사를 했을 뿐, 자신이 젊은 시절 만들었던 노래들을 끊임없이 불렀다. 이러한 가수들은 그냥 음악으로 승부하는 가수들이다.
또 하나는 정말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음악을 정말로 좋아하는 골수팬들로 공연장을 채웠다는 점이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소규모 공연 분위기는 기존 공연장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고 한다. 옆사람과 이야기하거나 사진 촬영을 하는 대신 음악에만 집중하며 관람했다고.
가수들의 소극장 공연은 우리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스타디움이나 돔에서 대규모 공연을 할 수 있는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같은 빅 스타가 1000명이 안되는 극장에서 공연하는 광경은 적어도 영국과 미국에서는 새로운 실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이 공연으로 1300억원(1억 1천 3백만 달러) 정도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쇼는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잘 나가는 해리포터보다 매출에 있어 더 나았다고 한다. 새 음반을 낸 마돈나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처럼 한 곳은 아니지만 소규모 극장(하지만 스프링스틴이 사용했던 극장보다는 조금 더 큰)을 이용해 미국 7개 도시, 유럽 3개 도시에서 82회에 걸쳐 쇼를 진행한다고 한다.
어떤 가수들은 돔 투어, 아레나 투어, 스테디엄 투어로 더 넓고 큰 공연장에서 더 많은 관객을 만나기 위해 공연을 확대하고 또 어떤 가수들은 관객을 더 가까이에서 친밀하게 만나기 위해 더 작은 공연장으로 찾아간다.
음악 공연도 비즈니스의 예외는 아니어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소비자, 고객, 관객을 만나 다른 감흥을 전달하는 것 같다. 관객 역시 자신의 취향에 맞는 공연의 형식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