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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Aug 29. 2019

출간 소식 <사람일까 상황일까>

HER Report 구독자 여러분께 제가 번역한 신간이 나와서 알려드립니다.
오늘은 두 가지로 기쁜 날인데요. 이 책이 ‘예스 24 오늘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서점에 나온 지 6일 만에 2쇄를 찍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말콤 글래드웰이 자신이 쓴 베스트셀러들의 플랫폼이라고 말한 사회심리학의 고전 <사람일까 상황일까(The Person and the Situation by Lee Ross and Richard Nisbett)>를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번역해왔는데 드디어 지난주에 서점에 나왔습니다. 이 책은 세상과 다른 사람,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사회심리학 책입니다.

책에 대한 소개는 주요 언론의 리뷰와 역자 후기로 대신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역자 후기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해 준 책

우리는 종종 직장 동료나 친구, 길거리 행인을 보며 ‘저 사람은 왜 저런 방식으로 행동할까?’ 하는 의문을 품는다. 직장 내 나이 든 매니저와 임원은 밀레니얼 세대를 보며 이기적이라 생각하고 반대로 젊은 세대는 나이 든 선배를 보수적인 꼰대로 여긴다.
사회심리학은 우리가 간혹 궁금해하는 이러한 의문과 사람들의 상반된 생각에 질문을 던지며 과학적인 답을 찾아가는 학문이다. 이 책의 제목 《사람일까 상황일까》는 사회심리학의 핵심 논지를 집약해서 보여준다.


그가 그렇게 행동한 것은 독특한 성격 탓일까, 아니면 그가 처한 상황 때문일까?

심리학에 아마추어인 우리는 보통 이 질문 앞에서 “그는 성격이 관대해서(혹은 과격해서, 내성적이라서) 그래” 하는 답을 내놓는다. 나아가 매년 세계에서 200만 명 이상이 치를 만큼 인기 있는(하지만 많은 전문 심리학자에게 그 과학적 토대를 공격받는) 성격진단 검사 MBTI 의 결과 유형을 들먹이기도 한다.

반면 ‘프로’ 사회심리학자는 한 사람의 성격과 특성에서 성급하게 답을 찾는 것을 조심하고, 그보다는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 요인이 무엇인지 찾아본다. 사회심리학이 수십 년에 걸친 실험과 검증으로 지금까지 찾아낸 결론에 따르면 우리는 행동에 미치는 사람의 성격요인은 과대평가하고, 상황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과소평가한다. 이를 학술용어 ‘기본적 귀인 오류’로 명명한 사람이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리 로스 교수다. 


나는 박사 과정 중 귀인이론을 활용해 공개사과의 인지 영향을 주제로 연구논문을 쓸 때 이 책을 처음 접했다. 누가 봐도 학자들이 저술한 교과서처럼 보이는(문장이 다소 딱딱한 편이다!) 이 책을 내 논문의 참고자료로 직접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직장에서 일하고 삶을 살아가는 데는 직접 참고서로 삼을 만했다.


살다 보면 더러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사람을 접할 때가 있다. 그럴 경우 대개는 속으로 그 사람의 못된 성격을 탓하며 속상해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그 상황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즉, 내가 상대를 대하는 방식(그에게는 상황)을 바꿔볼 궁리를 한다. 이는 혼자 속상해하는 것보다 효과적이고 자존감도 높여준다. 나의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중요한 상황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결국 상대가 바뀌기를 기대하기보다(그런 일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다!) 내가 그를 대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보다 과학적이고 현명한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조직·리더십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컨설팅과 코칭을 하며 이 책을 여러 번 인용했다. 우리는 가끔 상사나 부하에게 불만을 품거나 그들의 말과 행동을 못마땅해하면서 불평한다. 상사를 향해서는 “왜 좋은 아이디어를 제안했는데 답변도 없고 실행하지도 않지?”라며 답답해한다. 부하직원에게는 “왜 저들은 늘 불평만 하지?”라는 불만이 쌓인다. 그리고 부하나 상사의 행동을 꽤 자주 그들의 성격 탓으로 돌린다. 무심해서, 수동적이어서….


1972년부터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에서 파워랩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50년 가까이 조직행동을 관찰 연구해온 배리 오슈리Barry Oshry는 그 이유를 ‘시스템 무지system blindness’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나는 싱가포르와 보스턴에서 두 차례에 걸쳐 그의 통찰을 직접 배웠다. 그가 말하는 시스템 무지란 곧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못 본다는 뜻이다.


오슈리에 따르면 상사들은 과적overload 상태를 겪는다. 이들은 직원과 고객, 정부, 경쟁자에게 끊임없이 요구를 받는 탓에 복잡성을 피하려는 행동을 한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종종 직원들에게 “지금은 안 돼”,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말한다. 반면 직원은 취약성vulnerability 상태에 놓인다. 이들은 조직이나 상사가 시도하는 변화를 위험으로 여기고 피해의식을 느낀다. 


가끔은 조직 내에서 서로가 처한 상황은 못 본 채 비난만 할 때도 있다. 상사와 부하가 대화할 때 이는 개인 대 개인이 아니라 상대방이 처한 ‘상황’과 이야기하는 셈이다.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경우 상사에게 요청할 때 상사가 내 제안을 쉽게 지지하도록 단순화하는 것이 핵심임을 알아챈다. 그러면 상사의 무심함을 탓하기 전에 보고서 양식이나 방식을 고쳐 조직 내에 내 뜻을 관철할 가능성을 높이려 한다. 상황을 이해하면 상사 역시 부하를 비난하기에 앞서 부하가 피해의식을 느끼지 않도록 정보를 적극 제공하고,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해 피해자가 아닌 공동창조자co-creator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대부분 ‘아마추어 심리학자’로 상황이 행동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는 상황의 힘을 알고 이를 적극 활용하지만 또 누군가는 이유도 모른 채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는다. 똑똑한 직원, 소비자, 시민으로 살아가고 싶다면 현명한 리더, 교사, 부모, 정책 입안자로 활동하고 싶다면 로스 교수와 니스벳 교수가 들려주는 사회심리학의 교훈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번역은 우연한 계기로 이뤄졌다. 내가 푸른숲의 김수진 부사장, 조한나 씨와 식사를 하면서 이 책을 국내에 꼭 소개했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까지만 해도 책을 번역할 생각은 없었다. 훌륭한 책이긴 하지만 읽기 쉬운 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푸른숲은 이 책에 나오는 쿠르트 레빈의 경로 요인을 설계하듯 나를 서서히 번역자로 끌어들였다. 처음에는 번역 검토서 작성을 부탁했고 검토서를 쓴 뒤에는 번역을 맡겼는데 어쩌다 보니 결국 나는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작업은 2016년 시작했으나 여러 가지 현실적 이유로 늦춰지다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번역을 했다. 원서의 문장은 대체로 몇 개 문장을 이어 붙인 것이 많아 읽기가 쉽지 않다. 이는 적절히 몇 개 문장으로 끊어서 번역했다.

번역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김윤재(미국 변호사, 정치컨설턴트), 데이비드 차드(David Chard, EngagingMinds), 이강희(질병관리본부 서기관), 이세진(UNC-Chapel Hill 보건정책전공 연구원), 이정모(서울시립과학관장), 임재준(서울대의대 호흡기내과 교수)은 각 전문용어 번역과 관련해 조언을 주었다. 내가 니스벳 교수와 로스 교수의 전작 《Human Inference》의 번역본 《인간의 추론: 판단방략과 그 결함》(한규석, 박상철 공역)을 구할 수 없어 곤란해 할 때, 이를 번역한 전남대 한규석 교수는 친절히 책을 보내주고 응원해주었다. 1, 3, 4장의 통계 관련 부분은 권다롱새 박사(통계학)가 꼼꼼히 살펴보고 의견을 주었다. 번역가로는 나보다 한참 선배인 아내(김은령, 디자인하우스 편집주간)는 번역상의 고민이 있을 때 함께 고민해주었다. 나와 함께 일한 심심 편집팀의 이은정 편집장과 김수연 편집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특히 김수연 씨는 초벌 번역 원고에 꼼꼼한 피드백을 주었다. 번역 과정에서 저자에게 확인할 것이 있을 때 내 본래 계획은 먼저 로스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낸 뒤 답이 없으면 니스벳 교수에게 연락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든이 가까운 로스 교수는 40여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는 동안 늘 빠르게 답변을 해주었다.


책 본문 하단의 역자주는 심리학 용어와 인물을 중심으로 달았다. 주석 작업에 예상 외로 시간이 많이 들었지만 이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분량상 많은 부분을 줄여야 했지만). 심리학 개념은 주로 미국 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의 《미국 심리학회 사전APA Dictionary of Psychology》 제2판(Kindle Edition)을 참고했고 그 밖에 다른 참조사항은 표시를 해놓았다. 심리학자 정보는 두 가지를 참고했다. 하나는 〈뉴욕타임스〉와 심리학자의 소속기관 등에서 발표한 부고기사였다. 사회심리학계 거장들의 삶과 업적을 집약해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심리학 인명사전Biographical Dictionary of Psychology》(Kindle Edition)이었다.


이 책의 추천 서문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2013년 10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삶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는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알려줬다. 수년 전 그는 리 로스와 함께 《사람일까 상황일까》를 썼다. 만약 당신이 그 책을 읽는다면 당신은 내가 쓴 《티핑 포인트》, 《블링크》, 《아웃라이어》 등이 속한 책의 장르를 포괄하는 하나의 플랫폼을 발견할 것이다. 그 책은 내 삶을 바꿔놓았다.”


이 책은 내가 나 자신 그리고 주변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놓았고,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하는 깊이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그동안 세상을 살아오면서 내가 놓치고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해 준다는 차원에서 보면 이 책은 안경 같기도 하고 철학 책 같기도 하다. 한국의 독자 여러분을 그 세계로 초대하는 길에 한몫을 할 수 있어 무척 기쁘다.

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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