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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Sep 03. 2019

타임머신과 스탠포드대학원의 빨래방


[1995년 오래 전의 기억]


사람은 자기만의 '타임머신'을 갖고 있다. 어떤 노래를 듣거나, 어떤 대상을 보거나, 어떤 음식을 맛보거나, 어떤 냄새를 맡거나, 어떤 촉감을 느낄 때 갑자기 예전의 어떤 시간과 장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내게는 빨래방이 그렇다.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의 숙소에 들어온 것은 일요일 오후였다. 짐을 풀고 처음에 찾은 것이 빨래방이었다. 지난 2주 동안 목공수업을 하는 동안에는 손빨래 말고는 빨래를 할 기회가 없었다. 땀이 배어있는 바지부터 티셔츠, 속옷에 양말까지 빨아야 할 것들이 많았다.


여름 방학 일요일 오후 이 빨래방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빨랫감을 들고 이 방에 들어서자 세탁기와 건조기가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었고,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내 기억은 1995년으로 넘어가 있었다. 미국에 도착해 기숙사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였다. 나로서는 처음 빨래방을 접한 순간이었다. 동전을 넣고 빨래를 1시간쯤 돌리고, 또 건조기에 넣고 돌리고. 누군가는 빨래를 넣어놓고는 찾아가지 않아 다음 사람이 난감해하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남의 빨래를 빼서 밖의 바구니에 넣어 놓고 자기 빨래를 돌리기도 했다. 빨래를 하는 동안 자기 방에 다녀오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빨래방에 죽치고 앉아 책을 읽기도 했다. 빨래방은 비누 냄새와 다양한 색깔의 빨랫감, 세탁기 여러 대가 웅장한 소리를 내며 동시에 돌아가는 소리가 얽혀 그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아무도 없는 빨래방에서 빨래를 하고, 건조를 하고, 여유롭게 다림질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며 25년 전의 그 시절을 생각했다. 빨래방은 나를 완전히 다른 시공간으로 이끌어 갔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빨래가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갔다. 25년 전과 이 곳 빨래방이 다른 점은 두 가지였다. 비싼 수업료를 받기 때문인지, 스탠포드 대학원의 빨래방은 동전을 넣을 필요가 없었다. 빨래와 건조, 비누 등이 모두 무료였다. 바로 옆에는 커피를 무료로 마시며 조용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커피바도 있었다. 코스를 시작하기 전날과 끝나기 전날 이 곳에서 두 번 빨래를 했다. 그렇게 두 번 타임머신을 타고 오래 전의 기억으로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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