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R Report Oct 23. 2019

렌터카 유리창이 깨지자 잡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시작은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렌터카 유리창이 깨지면서였다. 미국 출장길, 어느 날 저녁에 보니 멀쩡하던 유리창에 이렇게 금이 가 있는 것이 아닌가. 렌터카 회사로 연락을 했고, 다행히 차를 빌릴 때 들었던 보험 덕분에 더 이상 추가 요금 없이 차를 바꿔 다닐 수 있었다. 보험을 들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다가 돈과 달리 시간은 저축과 보험이 힘들다는 생각을 했고, 그럼 돈과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돈은 미래를 위해 저축이 필요하지만, 시간은 지금 잘 써야 하는데, 때로 지금 시간을 제대로 쓰려면 돈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아래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주 쓴 칼럼이다. 올해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때 짝꿍이었던 친구들과 각각 단 둘이 짧은 여행을 했던 것도 이런 생각과 닿아있다. 은퇴 이후에 할 수 있겠지만, 올해 하고 싶었다. 이것이 어쩌면 친구와의 마지막 여행이 될지라도 말이다.



지난여름 미국 출장 때 일이다. 2주간 자동차를 빌려 다녔는데, 하루는 퇴근할 때 차를 보니 앞 유리창의 절반에 금이 가 있었다. 아주 오래전 미국에서 자동차 앞 유리창을 갈아본 경험이 있었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렌터카 회사에 연락하여 차를 바꾸었고, 다행히 보험을 들어 추가 비용은 전혀 없었다. 우리는 저축이나 보험 등으로 돈을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쓰거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보험을 미리 들었던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며 운전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시간에 대해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시간은 저축이나 보험이 불가능하다. 돈은 이후를 위해 아껴둘 필요가 있지만, 시간은 나중에 무엇을 하겠다고 미뤄두기보다는 지금 제대로 쓰는 것이 낫다. 무엇이 시간을 ‘제대로’ 쓰는 것인지에 대한 해석은 각자 다를 것이다. 다만 돈과의 관계에서 보면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지금 시간을 제대로 쓰기 위해 돈을 적지 않게 써야 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한 직장인이 가수 윤종신처럼 1년간 한국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이방인처럼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치자. 

직장을 휴직하거나 퇴직하면 정기적인 수입이 끊기게 될 것이고, 1년간은 돈을 벌지 못하고 모아둔 돈을 써야 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혼자서 떠나겠다는 것에 대해 가족의 반대가 있을 수 있다. 많은 직장인들에게 이는 힘든 선택일 수 있다. 상대적으로 40대에게는 힘든 모험이지만 30대에는 해볼 만한 모험일 수 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정선이 어디인지 찾아보자. 예를 들어 1년은 힘들지만 한 달은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 한 달이 힘들다면 2주는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 해외가 힘들다면 제주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혼자서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라면 장소와 시간은 자신에 맞게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올해는 오래된 친구와 단 둘이 아시아 지역에 여행을 가보는 해였다. 초등학교 동창과는 다녀왔고, 고등학교 때 짝이었던 친구와는 여행을 앞두고 있다. 함께 가는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쩌면 우리 둘이서 해외여행하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그것을 은퇴 뒤로 미루기보다는 지금 가고 싶었다. 죽음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준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가 데이비드 케슬러와 함께 쓴 <인생수업>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십시오."


둘째, 지금 시간을 제대로 쓰면서 돈이 크게 들지 않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 파트너나 자녀와 함께 해보고 싶던 것을 하거나,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것 등이다. 이런 경우 돈보다는 오히려 자기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것에 서투른 경우가 많다. 이들은 남을 위해서는 시간을 잘 내어주면서도 좀처럼 자신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어주지 않는다. 일정표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심지어 주말에도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 시간은 빽빽하게 잡혀있지만, 정작 자신과의 약속시간은 잡혀있지 않다.


이러한 것에 관심이 있다면 좌표를 그려 생각해보자. 엑스(x)축에는 돈이 많이 드는 것과 적게 드는 것, 와이(y)축에는 시간을 혼자 쓰고 싶은 것과 누군가와 함께 쓰고 싶은 것. 이렇게 하고 나면 4개의 영역이 생긴다. 


각 공간에 하고 싶은 것을 써보자. 얼마 전 아내와 각자 삶에서 하고 싶은 리스트를 교환하면서 어떻게 서로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줄 수 있을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 하고 싶은 것이 있는 반면 혼자서 하고 싶은 것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만들거나 돈을 마련하기 이전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내가 삶에서 하고 싶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직장 생활을 하며 상사와 고객이 원하는 것만 맞추며 살다 보면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 10가지부터 써보면 어떨까? 시간은 저축과 보험이 안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시간이야말로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 쓰는 게 좋다.


김호, 직장인을 위한 김호의 ‘생존의 방식’(77) 시간과 돈의 차이점, 동아일보 (2019. 10. 2.)

매거진의 이전글  타이페이에서 다시 확인한 '경로요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