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R Report Jan 18. 2019

책방의 전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팔로 알토의 독립 서점 ‘벨 북스’

이번 출장 중 샌프란시스코의 시티라이트 서점과 팔로알토에 위치한 벨 북스(Bell’s Books)에 들러 여유롭게 책을 볼 시간이 있었다. 두 서점 모두 일반 서점과는 달리 자신들만의 색깔을 갖고 있고, ‘독립서점’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곳이었다. 시티라이트 서점에 대해서는 지난 4월 7일 허리포트(http://her-report.com/archives/5661)에서 다룬 적이 있으니 오늘은 벨북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 서점은 자신을 ‘가족이 소유한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의 독립 서점(A family-owned, independent bookstore in Palo Alto, California)’이라고 설명한다. 시작은 1935년, 허버트 벨(Herbert Bell)이 24세의 나이에 자신의 상사이자 책딜러였던 데이비드 로이어(David Lawyer)와 함께 칼리지 북 컴퍼니(College Book Company)를 열면서부터다. 당시만 해도 스탠포드 대학교내에는 서점이 없었기에, 스탠포드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1년만인 1936년 학생들에게 책을 팔아봐야 돈이 안된다는 것을 깨달은 로이어는 2,300불에 서점을 벨에게 판다. 후에 벨은 서점 운영은 가난의 길이었고, 햄버거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고 이야기했다. 당시에도 비싼 렌트 비용 때문에 이 서점을 몇 차례 이사를 하게 되는데, 1948년에는 앞서 소개한 카디널 호텔 빌딩에 위치하기도 했다. 1953년 현재 자리잡고 있는 건물이 매물로 나오자 사들여 이사하게 된다. 1924년 지은 이 건물은 1988년 팔로알토시에 의해 역사적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사를 할 때의 일화. 카디널 호텔 빌딩의 주인은 자정까지 모든 책을 빼내지 않으면 소송을 하겠다고 위협을 했단다. 이 때 스탠포드 대학 독문학과 학과장, 서점 직원인 바바라 월(Barbara Worl), 상황을 딱하게 여긴 경찰관이 함께 카트를 들고 밤늦게까지 책을 모두 나르게 된다. 바바라 월은 이날 일을 하고는 허리를 다쳐 병원신세를 질 정도였다고. 스탠포드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바로 이 서점에서 들어온 월은 무려 55년 동안 이 서점에서 일했다. 벨 북스는 원예학 콜렉션으로 유명한데, 이는 월의 영향이 크다. 원예학에 대해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고, 강연은 물론 직접 출판사를 차려 이 분야의 책을 내기도 했던 그는 2017년 9월 자신이 가꾼 장미가 만발했을 때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벨의 가문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이 독립서점의 전통을 지켜왔다. 음악가였던 마이클 벨은 5년간 서점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관심사에 맞춰 도서 섹션을 개발했다. 도서관학과 법학을 전공한 조나단 벨은 1980년대 초반 서점 개편작업을 담당했다. 현재 서점 오너인 페이스 벨은 10년간 캐나다에서 살다가 10대 때 일했던 이 서점으로 돌아와 예술, 문학, 사회정의, 역사 분야를 강화했다. 남편인 크리스토퍼 스토러는 철학교수로 은퇴한 뒤, 이 서점에서 회계와 책정리 등을 담당하고 있다. 허버트 벨은 음악과 음식, 문학에 열정적이었으며, 지역 연극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가 1992년 사망했을 때, 그의 집에는 3만 권의 책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고. 허버트의 아내인 발레리아 벨은 1965년부터 50년동안 일했고, 목판화와 미스터리, 노동사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 서점의 신입직원인 타나는 역사와 언어학을 공부했고, 10년 넘게 일하고 있다.

벨 서점을 돌아보고,역사를 살펴보면서 독립서점의 전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첫째, 이들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주인과 직원들이 자신이 잘 알고 좋아하는 분야의 책들을 신중하게 선택하여 소개했다. 시티라이트 서점에서 재즈 관련 서적을 샀을 때, 카운터에 있던 직원은 자신도 그 책을 읽었다면서 “최고의 책을 고르신 것”이라고 말을 건냈다. 독립서점의 직원은 단순한 점원이나 판매사원이 아닌 상당한 독서가로 책에 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하나 보다.


둘째, 자신의 관심사에서 사회변화에 동참했다.벨 서점은 2차 대전 때에는 군인에게 책을 보내는 운동에 동참했고, 지역사회의 공원을 보호하고 지역 문화를 지키는 일에 적극 참여해왔다.


셋째, 이는 현실적인 이유인데, 만약 이 서점이 건물과 땅을 1950년도에 사놓지 않았다면 지금도 미국 내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팔로알토에서 그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을 지키는 데에는 철학만 있어서도 안되고, 현실적인 자산도 필요하다. 경제(돈)와 문화(철학)가 만나는 하나의 이상적인 모습을 팔로알토의 이 작은 독립서점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참고: http://www.bellsbooks.com/about

매거진의 이전글 실라버스(syllabus)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