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유 Jun 10. 2017

어느 봄날 100퍼센트의 연인을 만나는 것에 대하여

어머 당신,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난 거예요?!



주변을 보면 비교적 쉽게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연애와 연애 사이의 공백이 거의 없는 사람들. 상대적으로 나는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 도통 쉽지 않은 편이라, 연애를 잘(?)하는 남자 사람 친구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도대체 소개팅으로 어떻게 연애하는 거야? 고작 몇 번 보고 어떻게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거지?"


"그냥 말 잘 통하고 나쁘지 않으면 일단 만나보면서 사랑을 키우는 거야."


"보고 싶고 만지고 싶어야 연애를 하는데, 소개팅을 아무리 해도 그런 맘이 드는 사람이 없어ㅠ"


"그냥 호기심 정도로 시작해도 되는 거야. 만나다가 아니면 헤어지면 되는데 뭐가 그렇게 어려워~"



맞는 말이다. 사귀는 게 뭐 그리 큰 일이라고.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난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가끔은 스스로도 답답할 지경이지만, 맘이 가지 않는 것을 도통 어찌할 수가 없다. 고맙게도 관심과 사랑을 표현해주는 이들은 이따금씩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연애를 시작할 수가 없었다.


사랑을 받는 것 vs. 사랑을 주는 것


둘 다 행복한 일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나는 사랑을 '주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부류에 해당하는 것 같다.


꼭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힐링이 되는 그런 사람, 쉽게 손이 차가워지는 나에게 기꺼이 온기를 나눠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나라는 존재가 당신의 삶에 작은 빛이라도 더할 수 있음에 감사해지는 그런 사람.





나는 어쩌면 하루키 단편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남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에서 말하는 것처럼, 지극히 이상적인 100%의 사람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옛날 옛적에, 어느 곳에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소년을 열여덟 살이고, 소녀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다지 잘생긴 소년도 아니고, 그리 예쁜 소녀도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외롭고 평범한 소년과 소녀다. 하지만 그들은 이 세상 어딘가에 100퍼센트 자신과 똑같은 소녀와 소년이 틀림없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길모퉁이에서 딱 마주치게 된다.

"놀랐잖아, 난 줄곧 너를 찾아다녔단 말이야. 네가 믿지 않을지는 몰라도, 넌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야"라고 소년은 소녀에게 말한다.

"너야말로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인걸. 모든 것이 모두 내가 상상하고 있던 그대로야. 마치 꿈만 같아"라고 소녀는 소년에게 말한다.

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 앉아 질리지도 않고 언제까지나 이야기를 계속한다. 두 사람은 이미 고독하지 않다. 자신이 100퍼센트의 상대를 찾고, 그 100퍼센트의 상대가 자신을 찾아준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렇다고 내가 사랑했던 이들이 엄청나게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때 그 순간 나에게만큼은 100퍼센트였던 것 같다. 물론 그 숫자가 시간이 갈수록 익숙함과 권태에 힘입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다소 슬픈 일이지만, 처음 그 순간만큼은 굉장히 강렬하게 빠져들었다.


하루 24시간이 온통 그로 물들었을 만큼.


친구들을 보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상대방의 매력에 빠져 사랑하게 되는 부류도 있는데, 난 살짝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기질이 있긴 한 듯하다. 그렇다가 쉽사빠(쉽게 사랑에 빠지는)는 절대 아닌데.


사실 이런 기질은 위험하다. 상대의 마음과 상관없이 내가 먼저 동해버리면 금세 짝사랑이 되거나, 연애를 하더라도 '더 사랑하는 자'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글처럼 같은 순간 같은 마음으로 서로에게 흠뻑 빠지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게 가장 이상적일 텐데. (정말 그것은 기적이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흔히들 여자는 사랑을 담뿍 받고 살아야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연애와 결혼은 다르게 생각해야 하는 거라고. 연애는 없으면 죽을 것 같고 불같이 서로를 원하게 되는 매력적인 사람이랑 하더라도, 결혼은 상대가 조금은 덜 매력적이라도 나에게 지속적이고 은근한 사랑을 듬뿍 줄 수  있는 사람과 해야 한다고.


예전에는 그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연애를 하다가 상대가 내 인생에 필수 불가결한 존재가 되면 결혼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애타고 간절했던 나의 사랑은 그만큼 외로웠고 맘이 힘들었기 때문에, 지금은 마냥 그게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할 수가 없다. 하지만 머리는 알면서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도통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화창한 봄날, 불현듯 나에게도 100퍼센트의 인연이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머 당신,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난 거예요?"


하면서 덥석 안아줘야겠다.


(이렇게 봄날의 상상은 혼자 핑크빛으로.. 또르르)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에겐 그리워할 시간이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