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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유 Jun 03. 2017

우리에겐 그리워할 시간이 필요하다.

때로는 아날로그 감성이 필요해


스마트폰과 카카오톡은 우리 연애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서로의 일상을 너무나 쉽게 주고받을 수 있고, 심지어 지구 반대 편에 있더라도 와이파이만 있다면 국제전화 비용 없이도 무제한 통화가 가능하다.


메시지 옆의 "1"의 사라짐 여부에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갈음하고 읽씹과 안읽씹 사이에서 분노하기도 한다. (사실 보고도 못 본 척  클릭하지 않으면 그게 읽씹이든 안읽씹이든 무슨 차이인가.)


언제든 쉽게 상대방의 일상에 닿을 수 있는 것은 분명히 편안하긴 하지만, 어쩐지 우리에겐 서로를 궁금해하고 그리워할 시간이 없다.


살면서 가장 애틋하게 누군가를 궁금해하고 그리워했던 때는 입대한 남자 친구가 훈련소에 있던 시절이었다.


훈련소 시절, 총을 잘 쏴서 간신히 얻은 3분의 통화로 숨소리만 들어도 간절하고 눈물이 흐르던 그때. 얼마나 소리를 질렀던 것인지 한참 쉰 목소리로 보고 싶다고, 나는 잘 지낸다고 씩씩하게 말하는 그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잘 지내는 거냐고, 많이 힘들지는 않냐고, 보고 싶다는 말만 계속 반복했던 것 같다.


외딴곳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위로라곤 그저 손편지뿐이어서, 매일같이 일기 같은 손편지를 썼더랬다. 그렇게 군 생활 내내 100통이 넘는 편지를 썼다. 백일만에 휴가를 나와서 까까머리 검게 탄 그를 보았을 때도, 어쩐지 꿈만 같아서 계속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던 기억이 있다.


확실히 그리워할 시간은 그렇게 사랑을 증폭시키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지금 2017년의 사랑보다 80, 90년대 사랑이 더 애틋하였던 것임엔 틀림이 없겠다.


이를테면 라디오에 전하지 못한 사연을 보내놓고 두근거리고, 삐삐 쳐놓고 대답 없는 전화기만 물끄러미 지켜보던 시절. 휴대폰이 없어 집 전화를 걸고 부모님이 받으면 툭 하고 끊을 수밖에 없었던 시절. 문자메시지 비용이 아까워 하나의 메시지에 채울 수 있는 모든 글자를 꽉꽉 채워 보내던 그때. 잠들지 못한 밤 전할 수 없는 이야기를 손편지에 꾹꾹 눌러쓰던 그 시간에는 모두 "기다림"이 있었다.


지금처럼 모든 것이 과도하게 빠르고 쉽지 않았던 그때에는 기다리는 시간 동안 온통 당신으로 물들고, 어렵사리 가까워지는 시간 동안 온통 당신에 대한 궁금증으로 채워냈다.


모든 것이 빠르고 쉬운 지금의 우리에게는 당신을 그리워할 시간이 없다. 동시에 어쩐지 진정성도 옅어져 가는 느낌은 나만의 것일까. 무슨 말이든 언제 어디서든 빠르게 전할 수 있는 지금은, 무슨 말을 언제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카카오톡과 SNS으로 많은 사람들과 수백 마디를 하지만 어쩐지 아무 때고 전화를 걸어 어떤 이야기라도 할 수  있는 친구는 몇 없다.


쉽게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지만 어쩐지 우리는 더 외롭다. 쉽게 사랑을 시작하고 쉽게 사랑을 전할 수도 있지만 어쩐지 우리는 더 사랑이 고프다.


그러니까 가끔은 잠깐 Pause를 두고 당신을 그리워할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겠다.


곰곰이 당신이란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고 함께했던 시간을 홀로 되새겨보기도 하고, 처음이란 순간이 떠오르면 문득 설레 보기도 하며, 어쩐지 말로 하긴 쑥스러웠던 말들을 손편지에 담아보기도 하고.


모든 것이 쉽고 빠른 2017년에도, 가끔은 '쉼'을 보태어 아날로그 감성으로 돌아가 보자.


당신을 그리워할 시간,


어쩌면 함께 있는 시간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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