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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유 Jul 13. 2017

어떤 이별은 그렇게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누구나 주만이었고, 설희였던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 쌈 마이웨이가 종영했다.


플롯이 워낙 유쾌하고 배우들의 케미가 좋아서 보는 내내 즐거웠지만, 어쩐지 찡한 맘이었던 것은 설희-주만의 현실 커플 이야기 때문이었다. 길고 긴 6년의 연애 끝에 부부보다 더 부부 같은 사이가 되지만 어쩐지 예전 같지 않고, 서로를 잃은 후에야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는 흔한 이야기.


영화 '연애의 온도'나 '6년째 연애 중'에서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늘 이런 줄거리에 맘이 동하는 것은 우리는 누구나 주만이었고, 설희였던 때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는 게 내 꿈이라고...
엄마는 꿈 안쳐줘? 세상 사람들은 다 자기 계발하여야 돼?
니들 잘났고, 자기 위해서 사는데, 나 하나 정도는 그냥 내 식구들 위해서 살아도 되는 거잖아.
그거 니들보다 하나도 못한 거 없잖아, "


설희에게 주만은 그렇게 그냥 남자 친구가 아니라 설희의 세상이었다. 마치 당신이라는 세상 속에서 우리라는 견고한 울타리를 쌓아두고, 그 속에서 당신의 사랑을 먹고사는 행복한 작은 새처럼, 설이의 행복은 주만과 함께 있는 시간 그 자체였다. 낭만적인 데이트도, 값비싼 보석도 필요 없이, 설희의 꿈은 그저 소소하게 주만과 알콩달콩 아기 낳고 예쁘게 사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주만은 설희의 손을 놓고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버렸다.


"우리 만나는 육 년 동안 나 홧김에라도 한 번도 헤어지잔 말 한적 없어.
난 너한테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후회도 없어. 후회는 니 몫이야."


그렇게 설희의 세상은 무너졌다.


주만에게서 벗어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로 한 설희에게 설희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인자 우리 주만이 찾아 쌌지 말고,
나는 뭐 좋아햐, 나는 뭘 잘 먹어, 나는, 나는, 좀 그러고 살아!
네 인생에선 네가 상전이여!”  


설희는 비로소 자신에게 투자하기 시작하고. '우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나'로서의 날갯짓을 시작한다. 난생처음 화려한 네일아트도 받아보고, 비싸서 엄두도 내지 못했던 최신 휴대폰을 사고 그 안의 내용도 다 새 것으로 바꾸고. 그렇게 설희는 오롯이 자신으로서 당당해지고, 주만은 뒤늦은 후회와 애타는 구애를 통해 설희를 되찾게 된다.


드라마에서는 해피엔딩이지만, 현실에서는 글쎄, 과연 그 둘의 재회가 가능했을까.  



나 또한 누군가가 내 세상의 전부였던 때가 있었다.


가난했던 학생 시절, 외롭던 나의 삶에 당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 만으로 벅차던 때가 있었다. 남들 다 하던 평범하고 단란한 가족을 만드는 게 나에게는 너무나 꿈만 같던 일이어서, 그저 당신과 그런 가족이 되어 알콩달콩 사는 게 꿈이었던 때가 있었다.

사랑이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었고, 당신이 아닌 사랑도 생각해본 적도 없던 그때, 문자 그대로 당신은 내 세상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렇게 당신의 존재가 커질수록 나는 희미해졌고, 그렇게 특별하던 우리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이유로 남이 되었다.


나에게는 온 세상이었던 연애가 끝나고 나니, 희미해진 나를 되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당신이 없는 나는 무엇을 좋아했었는지, 당신이 없는 나는 도대체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지, 갑자기 텅 비어버린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필사적으로 나는 답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좋아하던 음악을 다시 시작하고, 혼자서만 끄적이던 글도 제대로 써보고, 스타일을 바꿔 한껏 치장하고 보란 듯이 다른 사람도 만나보고. 안 해본 일을 큰 맘먹고 해보기도 하고, 습관처럼 하던 일을 내팽개친 채 하지 않아보기도 하고.


그렇게 간절하게 헤매던 결과, 나는 생각보다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많은 사람이었다. '우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이었고, 당신이 아니어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떤 이별은 그렇게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흠뻑 사랑에 취해 나를 잃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경험을 통해야만 '나'를 잃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끔은 그냥 잔인한 진실도 외면한 채, 울타리 안의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당신만 바라보고 살던 때가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우리는 똑같이 이별했을 것이다. 나를 잃은 채로 건강한 사랑을 오래 유지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래서 설희-주만 커플의 해피엔딩이 비현실적일 지라도 위안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는 결국 남이 되는 결말이라도, 드라마라도 다시 님이 되어 다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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