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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유 Jun 29. 2017

더 사랑하는 자 vs. 덜 사랑하는 자

그 둘 사이에서 '쿨함'은 언제나 덜 사랑하는 자의 몫이 아닐까



"넌 참 쿨한 여자인 것 같아."


"응? 왜 그렇게 생각해?"


"넌 너의 경계가 확실하고 그것을 지키는 게 중요하잖아. 그만큼 나에게도 연연하거나 터치하지 않고. 그래서 넌 날 가끔 외롭게 할 것 같아."



얼마 전, 소위 썸 정도를 탔었던 그와 나누었던 대화.

심각하게 한 이야기도 아니었고 가볍게 지나가는 대화였음에 불구하고, 나는 계속 마지막 말이 마음속에 맴돌았다.


내가 누군가를 외롭게 한다는 말에 마음이 조금 쓰렸고, '쿨하다'는 표현이 낯설기도 했다. 난 사실 '쿨함'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사람이라, 때로는 혼자만 너무 뜨거워진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하기도 했는데, 무엇이 변한 걸까?


쿨하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나는 사실 '쿨함'이라는 것은 관계에서 주도권을 누가 가지냐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가진 성향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쿨하지 못한 것은 내가 당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내가 정이 많고 사람을 아끼는 성향의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라고, 쿨한 당신은 나를 덜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은 나보다 조금 더 자유롭고 독립적인 성향의 사람이라 그런 것이라고, 그렇게 쓰라린 자위를 하면서도 당신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곤 했었다.  



왜 나의 하루를 궁금해하지 않아?

왜 내 연락에 바로 답해주지 않아?

왜 내가 집에 늦게 들어가도 잘 들어갔는지 걱정이 안 돼?

...

왜 당신에게 나는 희미한 느낌이야?  



수많은 WHY를 던지며, 나를 외롭게 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정답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었던 그때, 나에게는 '그는 쿨하니까'라는 변명이 필요했었다. 나는 그래서 쿨하다는 표현이 그렇게 싫었다. 사랑은 뜨거워야 사랑이지. 쿨한 사랑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고.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감정을 어떻게 양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하면서도 분명히 연애라는 관계에는 더 사랑하는 자와 덜 사랑하는 자가 존재한다. 그 둘 사이에서 '쿨함'은 언제나 덜 사랑하는 자의 것이다. 둘 중 누군가는 뜨거워야 사랑이 유지되고, 둘의 온도가 똑같이 뜨겁다면 가장 이상적일 테지만, 슬프게도 모든 관계가 그렇게 이상적이지는 않은 법이니까.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 이별의 순간에는 오히려 후회가 없다.'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사랑에서만큼은 아낌없이 표현하고 내어주는 것이 진심이라고 생각했기에, 늘 더 많이 사랑하는 자가 되기를 자처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후회가 없는지 돌이켜보면 그렇지도 않다.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 쏟아부었기에, 미련이 없는 것은 맞지만 후회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외로움과 결핍을 당신에 대한 사랑의 크기로 착각하여 결핍이 증폭될수록 더 강렬한 사랑이라 생각했다. 잡힐 듯 말 듯 잡히지 않던 당신을 이해하기 위해 수없이 지새우던 밤들에 나에 대한 이해는 없었다. 외로울 수밖에 없던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당신의 품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건네는 작은 이해였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귀하게 여겨주지 않는다는 것도.


더 많이 사랑받기 위해 더 많이 사랑해주려 노력하지만 그만큼 돌아오지 않는 사랑에 몹시도 좌절하며, 그럴수록 사랑에 대한 결핍은 더 커져가고 노력할수록 더 공허해졌던 악순환의 띠를 끊어야 했다.


그렇다고 아낌없이 사랑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미리 방어하고 마음의 장벽을 쌓는 것은 오히려 연애가 주는 달콤함을 누릴 수도 없게 하니 가장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앞으로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면,


'나'와 '당신'이 각자의 오롯한 자리에서 100%가 될 수 있지만, '함께'여서 200%가 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싶다.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지만, 당신이라는 존재가 곁에 있어 그 행복이 더 다채로울 수 있는,


그래서 더 고마운 그 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사랑.



그렇게 쿨하지만 뜨거운 여자로,


강렬하지만 위태롭지 않은 사랑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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