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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유 Aug 02. 2017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가 머뭇거리며 놓지 못하던 것은
지금의 마음이 아니라
지난날 반짝이던 과거의 시간이었을까,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새벽 3시,

홀로 요란히 진동을 울려대던 휴대폰,


익숙한 이름, 익숙한 사진.


거의 반년만에 걸려온 전화였지만, 망설임 없이 습관처럼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오빠..?"
 
"OO야. 미안, 자고 있었지."
 
아주 오랜 친구처럼,

오랜만에 들어도 언제나처럼 편안했던 그의 목소리.
 
"잘 지내고 있어?"

"...."


"응?"


"사실 나, 잘 못 지내고 있어"


"왜?? 오빠 무슨 일 있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뭐랄까, 열심히 일하고 운동도 하고 부지런히 지내는데, 계속 마음 한 구석이 공허해."
 
그는 얼마 전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얼마 못가 다시 이별하게 되었다고,

그녀는 꽤나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그런데도 나의 그늘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말하며, 다시 누군가를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읊조렸다.

그래서 그녀가 그림자처럼 그에게 남아있던 나를 많이 질투했었고, 결국 이별하게 되었다고.
 
"우리는 어쩌면 평생 서로를 못 잊을지도 몰라.

아니 그냥 그렇다고 나는 인정해버렸어.
나도 아직도 종종 오빠 생각이 나.

이건 어찌할 수 없는 거야.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함께했고, 너무 가까운 사이였잖아. 지금 떠올려도 예쁜 추억이 너무 많고..

그래서 나는 그냥,

못 잊으면 잊혀지지 않는 대로 안고 살기로 했어."
 
다시 보면 애틋한 이야기인데, 어쩐지 통화를 할 땐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통화를 끊고 직감했다. 이게 진짜 마지막 대화일 수도 있겠다고,
 

다 타 버린 재가 다시 불씨가 될 수 없듯,


잊지 못한다 하여 다시 만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리워한다 하여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우리가 머뭇거리며 놓지 못하는 것은 현재의 마음이 아니라 지난날 반짝이던 과거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별한 지 벌써 1년,

비로소 우리는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이 아닐까.


 


 

상실은 초연을 낳는다.
 
아무리 아등바등하여도 이룰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혹은, 이룰 수 없어도 지나간 경험 그 자체로 유의미함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꼭 사랑의 결말이 결혼쯤이어야 해피엔딩은 아닌 것이다.
 
사랑하지 않고 상처 없이 평온하게 사는 것과

시린 상처가 남을지언정 뜨겁게 사랑하는 것,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더라도 후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젊은 날 가장 눈부시던 시절을 가장 예쁘게 누군가와 보냈다는 것' 그 자체로도 충분히 유의미하다.
 
그 추억이 아름다운 만큼 마음이 아릿해질 때도 있지만,
 
아마 그 시절 처음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언젠가 이 사랑도 끝날 것을 알고 있더라도,


난 처음처럼 온 마음 던져 사랑했을 것이다.
 
 
그렇게 담담한 위로로 다짐하며,

지나간 옛사랑의 갈무리를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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