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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유 Aug 24. 2017

연애말고 사랑이 하고 싶다구요,

함께 있으면
특별하지 않던 시간도 덩달아 특별해지는
그런 사랑이 하고 싶다구요,


얼마전 소개팅에서 있었던 일이다.


외모도 직업도 누가 봐도 꽤 괜찮았던 남자분이었는데, 한 가지 결핍이 있다면 일에 너무 몰두하느라 장기간 연애를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뭐랄까, 사랑보다 연애가 급한 느낌..?
 
"일하다가 가끔 답답하고 힘들 때가 있는데, 그걸 남자들끼리는 토로하지 않으니까, 그럴 때 여자친구가 있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해요."


"바빠서 자주 보긴 어렵겠지만, 그만큼 제가 최선을 다할거에요."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이해해줄 수 있는 여자친구가 필요해요."


"저는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는 걸 좋아해요. 그녀가 기뻐할 것을 상상하면서 선물을 고르는 것이 정말 즐겁거든요."


"드라이브를 좋아하는데, 혼자서는 영 재미가 없더라구요. 함께할 여자친구가 있으면 더 즐거울 것 같아요."
 
고맙게도 나를 예쁘게 봐주어 자기 PR도 할 겸 여러 말들을 쏟아낸 것은 알고 있지만, 어쩐지 너무 다급한 마음이 느껴져서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저 '연애가 하고싶어서' 하는 말처럼 들렸던 것 같다.


'나에게 끌려서'라기 보다는 그냥 '연애를 하기에 적당한 여자친구'가 필요해서의 느낌..?





사실 어떤 면에선 씁쓸하기까지 했다.


서로 다른 테두리의 시간과 공간을 살고 있던 남녀가 어떠한 계기로 서로에게 호기심과 갖게 되고, 각자의 삶 속에 서로가 조금씩 녹아들어 어느새 유일한 존재가 되는 과정 없이,


그런 유일한 존재가 필요해서 적당히 예쁘고 적당히 똑똑하고 적당히 착한 누군가를 찾아헤매는 느낌이, 사실 나에게도 아주 이질적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 사세요?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어떤 일을 하세요?
주말엔 뭐하세요?
취미는 뭐에요?
 
이왕이면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썩 괜찮은 직업에 비슷한 취미와 성향을 가진 누군가를 찾는 것.
 
물론 저 질문에 대한 답들이 나에게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30대의 연애는 그저 마음만 따라 가기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경험했던 탓일까, 전혀 다른 환경의 익숙하지 않은 성향의 사람을 만나는 것은 나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인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 또한 나와 비슷한 정도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에 두고 그 이상의 누군가를 찾아 헤맸던 것 같다.


하지만 이성과 감성의 방향이 같기는 어려운 것인지, 원하는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사람이 나타나더라도 나의 시선이 머물고 마음이 끌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게다가 이렇게 매번 똑같은 대화를 나누고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쩐지 소개팅봇이 된 듯한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누굴 만나도 설레지 않고 궁금하지가 않다. 이쯤되면 혹시 사랑하는 법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남자사람친구에게 이런 나의 마음을 토로했더니, 어떻게 사랑이 보자마자 생기냐고, 공유한 시간과 감정이 켜켜이 쌓여야 사랑이 되는 것이 아니냐고 의아해했다. 거기에 나는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연인이 되냐고 반문했지만, 어쩐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논하는 느낌..?
 
물론 나도 외롭고 연애가 고프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자친구가 필요해서' 연애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저 곁에 있어줄 '누군가'가가 필요했던 것이라면 어쩌면 어렵지 않게 연애를 시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스무살 불같던 사랑까진 아니더라도,


여느 때처럼 졸린 눈을 부비며 나섰던 출근길 아침

여름날 온종일 지리하게 내리던 비 대신 어느새 그림처럼 파란 하늘이 나를 맞이할 때,


늦은 저녁 터벅 터벅 발걸음을 옮기던 퇴근길

기분좋게 선선해진 밤바람이 찾아올 때,


유난히 길었던 하루를 보내고

온종일 지친 몸을 포근한 침대에 털썩 뉘었을 때


소란한 주말을 보낸 뒤 홀로 고요해진 일요일 밤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 한 잔이 생각날 때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문득 그 사람을 떠올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래서 무심코 지나치던 특별하지 않았던 시간도 그가 있어 덩달아 특별해지는,
 
그런 사랑.



휴, 연애말고 그런 사랑이 하고 싶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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