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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zog Jul 27. 2019

나랏말싸미, 왜 영화로 만들어졌니?

올해 초 개봉한 “극한직업”은 분명 특이했다. 일편단심 코미디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짧게 분절한 편집, 끊임없는 단문형의 말장난에 관객은 한눈팔 새가 없었다. 한국 영화사에서 “극한직업”이 유쾌함의 한 극단에 위치한다면 그 반대편에는 “나랏말싸미”가 놓일 것이다. 영화의 각본을 작업한 조철현 감독은 서사에서 일체의 유희성을 탈색하고, 영화를 개인의 역사적 견해를 시청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한글 창제의 주역이 신미대사였다는 가설에서 출발하는 “나랏말싸미”는 어떤 점에서 새로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보는 사람을 낯설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에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보기 드문 경우이다. 인물 간의 감정적/사상적 대립은 물론, 긴 호흡으로 발전하는 로맨스도 우정도 딱히 찾을 수 없다. 불같은 성미의 신미대사와 넓은 아량을 보이는 세종의 감정 다툼, 숭유억불 정책 하에서 불교를 일부 포용하는 세종과 반기를 드는 신하의 대립은 횃불이 되지 못한 채 불씨로만 남는다. 한글의 골격을 완성하는 긴 여정에 러닝타임 대부분을 할애하지만, 훈민정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절정의 순간은 극적으로 탄력을 받지 못한다. 장르적으로 보면 “나랏말싸미”는 드라마라기보다는, 드라마가 되고 싶은 다큐멘터리에 가까워 보인다.


나열의 방식을 취하는 이야기 전개는 마치 타이어가 펑크 난 채로 달리는 자동차처럼 보인다. 산스크리트어에 기반하는 한글의 구성 원리에 대한 착상, 자음의 체계화, 모음의 우연적 발견, 훈민정음 108자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 모든 단계는 극적으로 통일되지 않는다. 사라진 극적 긴장은 소소한 장난으로 메워진다. 끝말잇기를 통해 자음을 정리하는 과정은 흡사 먼 옛날 유재석과 강호동의 쿵쿵따를 모방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소꿉장난에 불과하다. 궁궐 마당에 초성 글자를 새기며 썸을 타는 승려와 궁녀의 관계는 타오르는 듯하다가 금세 식어버린다. 세종과 소헌왕후가 목욕탕에서 애정을 확인하는 신이 있지만, 잠시 스쳐갈 뿐이다. 



가끔 보면, 굳이 영화 매체의 형식으로 제작될 필요가 있었을까 의심되는 작품이 더러 있다. “나랏말싸미”와 유사한 패턴의 작품이 전에 있었다. 전통 한지의 제작 과정을 담은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가 그렇다. 두 영화는 기승전결 형식의 이야기 전달보다는 역사적 가치를 갖는 대상의 창작 과정을 설명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마치 박물관에서 큐레이터와 함께 투어 하는 것처럼 영화관에서까지 가르침을 얻고 싶어 하는 관객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영화관을 찾는 인간의 동기는 어디까지나 유희적 본성에 있다.


“나랏말싸미”는 “군함도”처럼 작품 자체에 대한 것보다 서사와 역사적 사실의 정합성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개봉 전부터 한창 제기되는 논란은 연출 스스로 자초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영화가 다분히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관객을 설득하는 것 같은 인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신미대사의 업적을 다시금 되새기는 게 목적이었다면, EBS 혹은 히스토리 채널에서 2부작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방영하는 것이 역사적 사실의 왜곡에 대한 논란을 덜고 연출 의도를 보다 명료하게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한 영화가 따분할 때, 그 양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그 화법이 낯선 경우이다. 이는 오늘날 관객들이 고전 흑백 영화를 보면서 인상을 찌푸리는 것과 같다. 다른 하나는 연출이 상투성에 의존하며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방식을 탐구하지 않는 데 있다. 아마도 “나랏말싸미”는 후자에 속하는 영화일 것이다. 공들인 미술은 15세기를 낭만적으로 그려내지만, 늘어지는 편집 리듬으로 인해 서스펜스나 고양감은 한순간도 발생하지 않는다. 


무료한 이야기는 주요 인물의 정서를 깊이 있게 파고들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송강호는 쇼트마다 무게감을 발휘하지만, 그가 표현하는 노쇠한 세종의 애민 의식은 크게 절절하지 않다. 박해일은 올곧은 학자의 고지식 외에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지 못한다.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역사가 망각했을지도 모르는 한 인물에 대해, 사전 조사를 많이 한 것 같다는 사실 정도이다. 집에 오면서 문득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에 등장하는 한 속담이 떠올랐다.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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