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 (缺乏)

-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람

by 빛의골방

얼마 전 토요일.

토요일도 일을 하는 남편을 둔 애 셋 맘은 토요일만 되면 '이번 주말은 어떻게 보내야 하나..'늘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러다가 서점을 가기로 결심하고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인 서점으로 향했습니다. 이렇게 두 문장으로 요약하니 참 쉽게 느껴지지만 5살 막둥이까지 세 아이를 데리고 첫 버스 탑승이라 기사 아저씨께도 한소리 듣고ㅠㅠ우여곡절 끝에 서점에 입성했지요.

한참 아이들 책을 골라주고 나에게도 보상을 주고 싶은 마음에 가장 눈에 뜨이는 책을 한 권 집어 들었습니다. 나태주 선생님의 '나태주의 풀꽃 인생 수업'이라는 책이었어요. 사실 책 표지에 '한정판 작가 사인북'이라는 문구에 누가 먼저 집어갈까 봐 급히 골랐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아서 아이들 등교 후 시간은 정말 일분일초가 아깝습니다. 한바탕 집안일을 해치우고 라떼 한 잔과 함께 주말에 구입한 책을 열어봅니다. 그 기쁨은 정말...!


책 뚜껑을 열고 작가님의 사인이 담긴 페이지를 보는 심정은 마지 어린이날 선물을 받는 아이처럼 마냥 신기하고 신이 납니다.


나태주 선생님의 글은 선생님의 시만큼이나 친숙하고 편안하게 읽혀나갔습니다.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세월의 내공과 인생의 지혜가 집약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읽어 나가 던 중 한 글귀에 눈길이 멈췄습니다.


결핍에 관하여,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나 자신에게 결핍된 부분이 있다면, 모자란 부분이 있다면, 찌그러졌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면, 무조건 숨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드러내 아름답게 빛낼 수 있도록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요."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는 어느 시점부터 '지랄 총량의 법칙'이 발현되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한창 부모님께 반항하고, 투정도 부리고해야 할 나이에 꽤나 얌전한 아이로 학창 시절을 보낸지라 나 스스로도 이런 모습이 낯설고 부모님께 받지 못한 관심에 대해, 그 결핍으로 인해 올라오는 감정들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경제적인 문제로 부모님은 늘 다투셨고 엄마는 책임감 하나로 어린 두 자녀를 키우셨습니다. 그로 인해 저와 오빠를 대학까지 잘 건사하셨고 결혼 전만 해도 전 늘 이런 엄마에게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이 교차했기에 '나라도 짐이 되는 딸이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제가 엄마가 되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부모님께 받은 정서적인 사랑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시간이 정말 너무 괴로웠습니다..

물론 엄마도 날 사랑했기에 그 책임감으로 악착같이 일하고, 힘들어도 경제적인 부분을 감당하시면서 살아오신걸 너무나 잘 알지만 그것이 머리로는 알겠으나 마음이 고장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기억을 해내려고 해도 부모님과 함께한 행복한 기억이 생각나질 않았습니다. 나보다 더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감사가 없느냐고 나 스스로를 아무리 질책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흔이 넘어 찾아온 뒤늦은 사춘기가 그간의 인생을 마구 휘젓고 할퀴고 상처를 냈습니다.



아마도 어쩌면 한 번쯤은 겪어야 할 진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문제라면 그 시기가 너무 늦게 왔다는 거겠죠. 그리고 혹여 우리 엄마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어떨까.. 엄마의 최선이 나에게 아픔이고 추운 계절로 기억된다는 게 미안하고 덜컥 겁이 나지만 나태주 선생님의 글을 통해 나의 결핍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꺼내 놓기로 마음먹습니다.



나는 나에게 있는 결핍을 발견하고 난 뒤, 엄마를 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리고 또 슬프게도 나를 닮은 큰 딸을 대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없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인생이 불행하게 느껴지고, 또 나에게 결핍을 안겨 준 대상을 향해 미움과 원망과 분노도 올라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결핍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그 공백을 어떤 작품의 '여백'처럼 남겨두는 법을 배우려고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어찌 보면 한 편의 작품일 테니까요.


각각의 이야기가 있는, 각각의 느낌이 있는, 각각의 주제가 있는 단 하나뿐인 작품.


물론 지금도 완전히 그 결핍에서 자유롭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인생의 '불완전함'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보려는 시도를 하는 중입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 요셉이라는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의 인생을 보면 결핍과 억울함에서 일인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 일찍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형들에게 미움과 시기 질투를 받으며 어린 나이에 먼 나라로 팔려가 노예가 됩니다. 심지어 억울하게 감옥에 까지 가게 되지요. 하지만 그는 '형통함'이라는 타이틀의 대명사가 되었고 결국 총리의 자리에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간 요셉이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는 형들을 만나는 장면에서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복수나, 미움, 분노는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있는 결핍과 억울함이라는 '불완전함'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이라는 그 큰 그림 속에서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계획하신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우리에게 있는 결핍을 '여백의 미'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결핍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내 생각에 있어야 할 것인데, 남들에게는 다 있는데 나에게는 없거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들. 이런 결핍을 저처럼 늦게 발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좀 더 일찍 발견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나 스스로라도 그것을 '못난 것'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못난 것일수록 조금 더 귀한 눈으로 바라보며,


결핍의 공간들을 인생이라는 작품 속에 완성도를 높여 줄'여백의 미'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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