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꼬마가 원하는 대답을 알기에 난 이렇게 답했다.
"응~엄마는... 트리케라톱스! 크앙~"
"그럼 나는 티라노가 될 거야. 크아앙~~! 엄마 우리 공룡 놀이 할까?"
"그래^^"
한바탕 공룡놀이를 한 뒤,
아들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나도 참 꿈이 많았는데..'
어릴 땐 미술을 좋아했다.
스케치북과 색연필이 내 소중한 보물이었다.
매일 그리고, 색칠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고,
학교에서 만들기 시간이면 더욱 날개를 달았다.
다들 뭘 만들어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뭘 만들까 아~?'
혼자 즐거운 상상에 빠졌다.
그래서 어른들이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화가요!"하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덧붙여, 엄마가 간호사였기에 간호사도 되고 싶었고
어느 날은 선생님도 좋아 보였는지 그 또한 되고 싶어 했다.
그렇게 꿈 많던 아이는 자라서 고1이 되었다.
미술시간에 '명화 그리기'수업이 진행되었고
수업시간에 다 할 수 없는 아이들은 집에서 그려오라고 했다.
내일까지 완성을 해가야 하는데 아직 다 그리지 못한 상황.
공부로 밤을 새라면 절대 못할 일인데
몇 주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 피곤함의 자리를 뿌듯함으로
채웠기 때문일까? 밤새 그림을 그렸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미술 시간이 되자 각자 그려온 그림을 제출했고 선생님은 그림을 쭉 둘러보셨다.
그리고 두 작품을 골라 칠판 앞에 세우시더니,
"얘들아, 둘 중 더 잘 한 작품에 손 들어 보자."라고 하셨다.
물론 그중 하나는 내 그림이었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아마도 어딘가 전시를 해야 할 모양이었나 보다.
아이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그리고 둘로 나뉘었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치-난 미술학원도 안 다녀 봤는데 저 친구는 미술학원도 다니고..
그럼 내가 더 잘 그린 거 아닌가?'
결과는 다른 친구의 작품으로 기울어졌고
꽤나 아쉬웠지만 겉으론 티 내지 않았다.
소위 '형편이 좋지 않은 집' 둘째 딸로 태어난 나에게
의, 식, 주 외에 다른 지원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상황이었다.
눈치는 또 왜 그렇게 빠른지 어느새 이런 상황을 인지해버렸고
난 학원을 보내달라는 말 대신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공부라도 흥미가 있었으면 좋았을걸. 그 역시도 형편이 그리 좋지 못했다.
어느새 고3이 되었고 홀로 독서실에서 자습서와 씨름하던 어느 날.
난 일생일대의 큰 결심을 했다.
'그래, 편지를 쓰자!'
공부로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을 직감했기에
살 길은 오직 미술뿐이라고 생각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부모님께 간절함을 담아 입시 미술을 시켜 달라고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도 해 보자는 심정으로 울면서 한 글자씩 편지를 써내려 갔다.
안될 걸 알면서도..
'제가 공부를 잘하는 딸이 아니어서 죄송해요..
잘하고 싶은데 저도 마음대로 안 돼요.
그래서 진짜 어려운 거 알지만 한 번만 부탁드려요..
저 미술 학원 다니고 싶어요.
그럼 정말 열심히 할게요..ㅠ.ㅠ!'
그날 저녁,
떨리는 마음으로 부모님께 편지를 보여 드렸다.
결과는...
"미술은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안된다."
"..."
그 대답을 듣자마자 집을 뛰쳐나갔다.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난 이제 끝이라는 생각뿐이었다.
뭐, 예상한 결과였지만.. 그래도 아팠다.
원했던 미대의 꿈은 포기했지만,
다음 해 한 번 더 수능을 치르고 대학생은 될 수 있었다.
벌써 이십 년도 더 지난 일인데
삶이 팍팍할 때면 그때의 기억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만약 내가 미술학원을 다녔다면, 지금의 인생이 달라졌을까?'
모를 일이다.
살아보지 않은 인생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십 대의 꿈은 좌절되었고,
이십 대는 꺾인 길을 따라 달려갔으며,
삼십 대는 가던 길을 멈추고 새로운 길을 찾았다.
사십 대에는 더 이상 꿈꿀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난 또 다른 꿈을 꾼다.
앞으로 다가올 오십 대와 그 너머를 정성껏 맞이하기 위해서.
별거 없어 보이는 인생의 구슬이라도
잘 꿰어보면 별거가 될 수 있을지 또 누가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