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뭐길래

by 빛의골방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아들 낳으려고 셋째 낳으신 거예요?"






위로 딸 둘에 막내가 아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인 정서상 그런 생각이 드나 보다.

전혀 아닌데 말이다.


사실 내 바람은 딸 셋이었다. 자라면서 보니 주변에 딸부잣집은 왠지 화목하고 나중에 성장해서도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가 생긴 사실을 알았을 때도 나와 신랑은 딸이어도 전혀 상관없겠다는 생각이었으나 양가 부모님들은 아니었다. 일단 친정 엄마는 셋째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일단 화부터 내셨지만(아마도 딸 걱정이었으리라!) 손주가 태어나자 "그래도 아들이어서 얼마나 다행이니"라는 말씀을 하셨다.


시 어머니는 첫째 때부터 내심 아들을 바라셨다.

첫째 때 성별이 나오고 전화로 "어머니 딸이래요~"했더니 마치 자기 귀를 의심하듯 연신,

"뭐라고? 딸? 딸이라고?"를 되물으셨다.

둘째도 딸이어서였을까? 셋째가 생겼다는 말에도 사실 별로 반가워하지 않으셨으나 성별이 나온 날은 달랐다.

"어머니 아들이래요!" 했더니 그것 보라며 본인이 꿈에서 밤을 주웠는데 그게 아들꿈이라며 급 태몽이야기를 하시며 세상 기뻐하셨다.



요즘은 딸을 더 선호하는 세상이 되었다지만 내가 태어나던 80년대만 해도 그저 아들이 최고인 시대였다.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부터 써온 비밀 일기장에는 두 살 위 오빠와 차별당한 설움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엄마한테 나도 학습지 신청해 달랬더니 오빠가 풀다 남긴 학습지를 주며 나보고 풀라고 한다. 나는 무슨 짬처리 통인가? 왜 나는 맨날 오빠가 하다 버린 것만 써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오빠만 나이키 운동화를 사줬다. 나도 새 운동화 갖고 싶은데 사주지도 않고 오빠는 비싼 메이커 운동화 사주는 건 정말 너무하다!"


"내 생일인데 엄마는 된장국을 끓였다. 오빠 생일에는 친구들 불러서 불고기에 파티까지 해줬으면서 내 생일은 기억도 못하고 미역국도 안 끓여주다니.. 난 생일이 정말 싫다."




이뿐이겠는가. 단지 어린 시절뿐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오랜 시간 공부를 해온 오빠는 계속해서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살았고 상대적으로 난 빨리 경제적인 독립을 해야겠단 일념하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기 때문이다.


아들 사랑은 부모님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대를 넘어 할아버지의 사랑은 더 끔찍했기 때문이다.

아빠가 장남이었기 때문에 오빠는 가문의 대를 이을 장손이었다. 뭐, 이걸로 할아버지 사랑은 게임 끝 아닌가.


세뱃돈 더 많이 받는 건 기본이고, 할아버지는 오빠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다.

아빠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혼자 사시던 할아버지와 합가를 해서 10년 정도 함께 살았던 시간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성에 안 차는 장남과의 동거가 꽤나 맘에 안 드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손주만큼은 사랑하셨기에 우리 가족을 받아 주셨는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방이 2개였고 옥탑방이 하나 딸린 다세대 주택 맨 위층에 살았는데 방이 2개뿐이니 하나는 엄마, 아빠가 쓰고 나머지 방에는 할아버지와 오빠가 지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옥탑은 내 차지였다.


그 옥탑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 평 반? 정도 되는 사이즈에 여름이면 정말 숨이 막히도록 푹푹 찌는 찜통에 에어컨하나 안 달린 공간이었다. 그리고 벽지는 들떠서 그 사이로 엄지 손가락 두 마디 사이즈의 바퀴벌레가 우글거리는 방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제 갓 스므살이 된 나는 그 방에서 매일 울면서 잠들었던 서글픈 기억이ㅠㅠ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학교에 다녀와보니 집안 곳곳에 "절수!" "절전!"글씨가 붙어 있는 게 아니겠는가?!

세상에.. 할아버지가 내가 물도 전기도 안 아껴 쓴다며 그렇게 써 붙여 놓으셨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것 같다..)



세월이 흐르고 난 1남 1녀 중 장남과 결혼을 했다. 신랑에게 연애초반에 자라면서 겪어온 '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신랑은 그게 말이 되냐며 내 말을 믿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신랑을 보면서 장남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모든 혜택을 누려서 그런가? 다른 형제들이 받는 차별은 전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십 년이 흐른 지금,


"와, 자기 말이 맞네. 진짜 장인 장모님이 형님이랑 자기랑 차별하는 거!" 사실을 인정받았다.


근데 이게 참.. 내 말이 증명되었다는 것이 잠깐 기뻤다가도 막상 펙트폭격을 당하니 또 묘하게 기분이 별로였다. '아니야! 난 사랑받는 딸이야!'라고 막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지고. 인간이란 참 아이러니하다.


그럼에도 나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있었으니 그 사람은 바로 '할머니'다.


할머니는 아들만 넷을 키우셨다.

딸도 하나 있었는데 어릴 때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들었다.

그래서일까? 내가 태어나던 날 병원 문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아들이에요? 딸이에요~?!"를 외치셨다고 한다.

의사가 엄마한테,

"할머니 누구 바라고 그러신데요? 아들이요?"하고 물었는데 엄마는

"아니요~딸바라시고 그러신 거예요."하고 말했단다.

그랬다. 할머니는 손녀를 원하셨던 것이다.


할머니는 나를 정말 정말 사랑하셨다.

유년시절 엄마가 일을 하셨기 때문에 얼마간 할머니손에 키워졌었다.

할머니는 음식 솜씨가 정말 좋은 분이셨다. 어쩔 땐 물 오징어를 직접 말려서 반 건조 오징어를 만들어서는 티브이를 보고 있는 내 뒤에서 "냠냠~맛있다^^"하고 장난을 치며 가져다주셨다.


한 번은 다리를 다쳐서 붕대를 감은 친구가 부러워서

"할머니~ 나도 붕대 감고 싶어!" 했더니 무릎에 밴드를 붙여 주시고 엎어 주시면서

"아이고 우리 큰 애기~~"그렇게 달래주셨다.


이상하게도 엄마에겐 그렇게 서운한 감정이 폭발하는데

할머니를 생각하면 그저 사랑 밖에 기억나는 것이 없다.


아직도 내 핵심 기억 속에 그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의 흔적이 있다면 그건 바로

'할머니의 사랑'일 것이다.


할머니는 비록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그 사랑이 힘든 순간마다 문득문득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부드럽고 따뜻하게 쓰다듬는다.

그리고 속삭인다.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애쓴다고.


그 격려에 기대어 한바탕 펑펑 쏟아내고 나면 또 거짓말처럼 다시 일어날 힘을 얻는다.




지금은 비록 어설프지만,

언젠가는 나도 세상에 그런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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