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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Jul 07. 2020

"사유는 의무다."

나다 이나다, 『권위와 권력』

*유튜브 해설 : https://www.youtube.com/watch?v=FwMralfHfxQ




우리의 일상 속에는 수없이 많은 선택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여자 친구랑 데이트할 식당을 고른다던가, 주말에 볼 영화를 고를 때, 혹은 서점에서 소설책을 고를 때, 그도 아니면 휴가 때 갈 여행지를 고르는 것처럼 말이죠. 이때 우리는 보다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 이른바 참고 자료를 들여다보곤 합니다. 이를테면 미쉐린 가이드라던지, 아카데미 수상작 목록, 혹은 노벨 문학상 후보, 아니면 론리 플래닛 같은 여행 잡지들 말이죠.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러한 정보들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까요? 또한 그 같은 정보들의 권위는 도대체 누가 부여한 걸까요? 인간이 권위에 복종하는 심리 기제를 재치 있게 풀어낸 오늘의 책, 나다 이나다의 『권위와 권력』입니다.







나다 이나다에 따르면 권위와 권력은 인간들로 하여금 복종하게 하는 힘을 갖습니다. 다만 그 둘의 결정적인 차이가 크게 두 가지 있는데요. 첫 번째는 바로 자발성의 여부입니다. 즉 권위 앞에서 우리는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그에 반해 권력은 우리를 복종하도록 강제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가령 사전에서 오돌뼈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이를 확인한 우리는 속으로 ‘오돌뼈란 틀린 말이며 앞으론 ‘오도독뼈’라 불러야겠구나’ 라고 생각하곤 하죠. 바로 이것이 권위입니다. 즉 우리는 사전이 틀렸을 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접어두고, 사전이 가진 권위를 인정하며 자발적으로 사전의 내용에 복종하게 되는 거죠. 이처럼 권위는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레 흐르는 위치에너지 같은 것입니다. 한편 권력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대체로 권력은 권위가 통하지 않을 때 행사되곤 하는데요. 가령 직장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불합리한 부탁을 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때 용기 있는 부하직원이라면 상사의 일방적인 권위에 대항하여 그의 부탁을 거절할 자유가 있겠죠. 그런데 대개의 경우 그들은 상사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 겁니다. 거절했을 때 겪게 될지도 모를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이죠. 바로 이것이 권력입니다. 즉 권력은 우리의 행동을 직간접적으로 강제하기 마련이죠.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권위 보다 권력에 대해 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곤 합니다. 권위 앞에서 우리는 그것을 따를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반면 권력은 우리의 복종을 강제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그는 권위가 권력만큼이나 위험하다고 이야기하죠. 그 이유는 권위와 권력의 두 번째 차이점 때문입니다. 그에 따르면 권력은 인간의 공포심을 이용하는 반면 권위는 인간의 불안감을 이용합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사장은 감봉이나 혹은 해고 등의 구체적인 외부 공포를 이용하여 사원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죠. 이때 사원은 혹여나 해고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 때문에 사장의 권력에 복종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즉 권력이란 외부의 공포를 이용하여 그에 따르지 않을 수 없게끔 강제하는 힘이라 할 수 있죠.


그에 반해 권위는 공포심이 아닌 불안감과 관계 맺습니다. 자명하게도 우리 모두는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죠. 이때 땅은 현실적 기반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현실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있을 때야 근원적인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돌연 현실로부터 몸이 붕 떠서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이때 인간은 불안감에 휩싸일 겁니다. 마치 물속에서 발이 땅에 닿지 않아 불안에 떠는 아이처럼 말이죠. 이처럼 현실과의 접촉을 상실하여 불안감에 휩싸일 때 인간은 권위에 의지하게 됩니다. 가령 매일 같이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뉴스의 권위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현실과 접촉할 수 없고 따라서 현실을 그대로 알려주는 것처럼 보이는 뉴스의 권위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수밖에 없죠. 이처럼 현대인은 타인이 만들어준 음식을 먹고, 타인이 만들어준 옷을 입고, 타인이 써낸 책을 읽고, 타인이 전해주는 소식을 들으며 세상을 파악합니다. 즉 오늘날 우리는 땅에 발들 딛고 세상과 직접적으로 관계 맺기 보다는 세상과 매개적으로 소통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거죠.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인간은 실존적인 불안을 느끼게 되었고 바로 그 불안을 미디어가 해결해주며 비로소 미디어가 현대 사회의 커다란 권위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다 이나다는 말합니다.



저자의 말 대로 작금의 현대인은 많은 판단을 타인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가령 TV에서 그랬다더라, 어떤 학자가 이랬다더라, 다른 나라에선 이런다더라, 유튜버가 그렇다더라 등등. 우리는 그렇듯 매개된 지식을 진실로 여기고 자연스레 그 권위를 인정하게 되죠. 이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단순합니다.모든 지식으로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말자는 거죠. 즉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정보가 단지 지식일 뿐 진리는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겁니다. 물론 이러한 비판적 태도는 우리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지 사회의 권위를 부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권위주의에 대항하여 끊임없이 질문하는 주체가 되시기 바랍니다. 모든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권위주의의 독단 뿐일 테니 말이죠. 칸트는 말했습니다.


“미성숙이란 지성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지성을 사용할 결단력과 용기를 내지 못할 때 (미성숙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감하게 알려고 하라! 감히 너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물론 칸트의 말은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권위가 말하는 대로 믿으며, 권위가 보여주는 대로 판단하죠. 아무쪼록 그의 말처럼 과감하게 지성을 사용할 용기가 가득한 사회를 소망하며 오늘의 포스팅을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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