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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Jul 24. 2020

"사람은 배경이 될 수 없다"

조금 평범한 일기


짧은 일기


카페에 꽤 오래 머물렀다. 이따금 단골 손님들이 와서 사장님과 안부를 주고 받곤 하더라. 심지어 어떤 손님은 외상을 하기도, 또 어떤 손님은 도리어 본인이 사온 케잌을 선물하기도 하더라. 카페의 주황 조명과 더불어 괜스레 더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집에 오는 길에 제로콜라를 사려고 편의점에 들렀다. 익숙한 빨간 로고가 박인 페트병을 하나 집어들고 얼른 계산하고 나왔다. 그런데 집에 올라와 콜라로 목을 축이는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까 편의점 직원이 어떻게 생겼더라? 남자였던가, 여자였던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니, 애초에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던 것 같다. 하기야 편의점 직원과 나는 서로가 서로를 그저 배경으로만 간주했던 건 아닐까.




지금 당장 창밖을 바라보면 도로 위를 쌩쌩 달리는 저 수많은 자동차들의 개별적인 향방은 내게 아무 의미 없다. 5분 전에 바라본 창밖, 한시간 전에 바라본 창밖, 어제, 혹은 1년 전에 바라보더라도 창밖으로 펼쳐진 도로엔 끝없이 자동차들이 하염없이 달릴 뿐이다. 그들은 그저 나의 창밖 풍경을 채워주는 하나의 배경일 뿐이며, 전면적으로 타자화되어 있고 사물화되어 있다. 창은 그들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매개가 아닌 단절하는 장애일 뿐이다.




오늘날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맺기는 오감에 의한 직접적 관계를 떠나 매개적 관계로 변모했다. 전자는 인격적 관계를 형성하는 반면 후자는 도구적 관계를 양산하리라. 어제 온 손님과 오늘 온 손님이 아무런 차이가 없다 여기는 카페 사장이라면 손님과 도구적으로 관계 맺는 거라 할 수 있다. 그에게 손님은 그저 하루의 매출을 올리는 도구이자 배경일 뿐, 어찌 서로의 삶으로의 도약을 기대하랴. 반면 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꿈꾸는 낭만이 살아 있는 사장이라야 선물도 받고 외상도 해줄테지. 그런 의미에서 사장님의 품격은 굳이 나의 형용이 무색할 만큼의 그윽함이 엿보인다.




n번방 사건 등의 디지털 범죄가 기승이다. 가해자들에게 피해자는 그저 배경화 되고, 타자화 되고, 사물화 된 디지털 세계의 파편 같은 건 아니었을까. 창을 허물자. 창밖 풍경에 일말의 공감 능력도 잃은 범죄자들, 그저 창밖 풍경은 나의 감상을 위해 존재한다는 오만한 시선의 지위를 박탈하자. 사람은 배경이 될 수 없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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