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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Mar 16. 2021

에리히 프롬의 철학

『에리히 프롬 읽기』, 박찬국


01.프롬의 사회학

-사회적 성격-


프롬은 그가 살던 사회의 개인들이 정신적으로 피폐하다고 진단했다. 예컨대 2차 대전에 소집 된 미국 청년 중 정신 질환에 해당하는 비율이 약 20%에 달했으며, 또한 정신병 환자가 미국 전역의 병상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토록 개인의 정신이 병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 프롬은 개인들이 머무는 사회가 병들었기 때문이라 답한다. 즉 프롬은 사회와 개인이 주고 받는 상호작용에 집중함으로써 이른바 역동적인 인간관을 피력했던 것이다. 따라서 프롬의 심리학은 사회학과의 경계를 가뿐히 허문다. 개인이 병든 이유가 사회 때문이라면 개인의 정신을 치료하는 것보다 사회 구조를 개선하는 일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프롬은 사회학과 심리학의 결합이라 할 만한 개념, '사회적 성격'이라는 이론을 제안한다. 이는 '특정한 사회가 지속적으로, 그리고 순조롭게 기능하기 위해 그 사회 구성원들이 갖지 않으면 안 되는 성향'을 뜻하는 것으로, 즉 개인과 사회구조가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개인에게서 역동적으로 생성되는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은 시간 엄수를 칼같이 여기는 성향을 갖기 마련이며, 원시 씨족 사회에서는 혈연 관계에 대한 의리를 중시하는 성향이 중요해진다. 이는 개인에게서 발견되는 사회적 성격인 동시에, 이러한 사회적 성격을 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할수록 그들이 속한 사회가 지속/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상술한 바에 따르면 앞서 언급했던 프롬의 진단, 즉 프롬이 살았던 동시대인들의 빈곤한 정신은 그들이 속한 사회로부터 분석되어야 한다. 자명하게도 프롬이 살았던 20세기는 자본주의가 태동하며 온 사회를 자본주의의 그늘 아래 드리웠던 시기이다. 따라서 프롬은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으로부터 개인의 심리적 피폐를 조명한다. 프롬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으로 하여금 소외를 유발한다(물론 '소외'는 프롬의 독창적인 개념이라 할 수 없으며, 다만 우리는 이로부터 프롬이 마르크스로부터 받은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예컨대 자본주의 사회의 개인은 자신이 수행하는 노동에서 별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으므로 마음 속 깊이 '나태'를 동경하게 되며, 또한 자신의 생산물에 대해서도 큰 애착을 갖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 구도는 개인을 타인으로부터 소외시키도록 작동하며, 나아가 개인은 경쟁력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상품 가치로 전락시키며 자신의 인격적 가치로부터 스스로 소외되기 시작한다. 심지어 개인은 사회와 국가로부터 소외되기에 이른다. 사회는 오직 시장 원리에 따라 작동되므로 개인은 사회의 주체적인 운영자가 될 수 없으며, 또한 시민으로서의 개인 역시 거시적 국가 체제에선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므로 극도의 소외와 좌절만 겪을 뿐인 것이다. 물론 '소외'는 비단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은 아니라고 프롬은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소외는 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황금 송아지와 비슷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동으로 질료를 빚어 황금 송아지를 창조하고서도 도리어 황금 송아지를 숭배하며 스스로를 무력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선 시장법칙이 마치 자연법과 같은 지위를 차지한다. 만약 시장으로부터 선택 받지 못하여 도태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오직 능력 없음에 대해 스스로를 자책해야 할 뿐이다. '자유'라는 허울 좋은 가치의 범람 속에서 개인은 '잘' 살 수도 '못' 살 수도 있는 자유를 기꺼이 스스로 책임져야 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사회는 도태된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을 무시할 명분을 갖게 된다. 바야흐로 무한 경쟁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프롬은 현대산업사회의 구성원들이 갖게 되는 병적인 정신으로 '네크로필리아'를 지적한다. 본래 네크로필리아란 죽은 것에 대한 사랑, 쉽게 말해 시체 성애를 뜻하는 것이지만 프롬은 이러한 의미를 확대 및 변용하여 '인공물을 포함하여 살아 있지 않은 것을 살아 있는 것보다 더 선호하는 정신 성향'으로 사용한다. 즉 인간은 살아 숨쉬는 인간적이고 생명적인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죽어 있는 것들, 이를테면 숫자와 사물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프롬은 이러한 정신적 성향이 수량화와 추상화가 일상화된 사회 구조 때문일지 모른다고 분석한다. 정량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가치만 중시하는 산업 사회의 개인은 생활에서 벌어지는 모든 경험조차 화폐 가치에 따라 평가하게 되며, 따라서 교환될 수 없는 것은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되니 말이다. 즉 현대인은 돈으로 측정 불가한 생동하는 경험 대신 돈으로 교환 가치가 출중한 죽은 경험을 추구하게 된다. 다시 말해 현대인은 내 옆에서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친구의 다정한 미소보다 잠재적으로 수많은 가치와 교환 가능한 금일봉에서 더없이 큰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02.프롬의 인간학

-규범적 인본주의-



프롬의 규범적 인본주의는 인간에 내재한 다양한 욕구와 욕망을 전제한다. 다만 애석하게도 인간은 다양한 욕구 중 사회가 용인하는 욕구만을 진작시킬 수 있다. 예컨대 전쟁이 만연하여 개인의 용기가 (사회로부터)요청 받는 시대에는 전쟁을 승리함으로써 획득 가능한 명예를 욕망하는 개인들이 많아야 하며, 또한 물질을 중시하는 시대의 개인들은 마찬가지로 물질중심적 가치관을 담지하여야 생존에 유리하다. 만약 사회가 용인/장려하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면 금방 이단아 취급 당하기 일쑤이며, 사회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즉 도태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프롬은 인간에겐 다양한 욕구와 욕망이 있다고 전제했다. 즉 인간은 가지각색의 욕망의 소유자이되 자신이 속한 사회가 허락하는 욕망만을 꺼낼 수 있으며, 이때 미처 꺼내지 못한 개인의 욕망은 해결되지 못한 채 억압된 기억으로 남아 개인의 정신 건강에 해를 끼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프롬은 인간에게 내재한 욕망으로 어떠한 것들을 언급했을까?



상술한 바와 같이 프롬은 인간에게 다양한 욕망이 내재한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인간의 다양한 욕망들은 결국 하나의 근원적인 열망이 조금씩 모습을 달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근원적인 열망은 무엇인가, 바로 세계와의 합일을 추구하는 욕망이다. 이는 동물과 달리 인간만에게만 고유한 이성 때문에 그러하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고도의 사고 능력을 가진 존재이다. 동물은 그렇지 않다. 동물은 자연이 그들에게 허락한 본능에 따라 살며 마침내 삶이 쇠할 때 죽을 뿐이다.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존재에게 죽음이란 없다, 라는 어느 철학자의 통찰을 빌린다면 동물에겐 탄생도 죽음도 없을지 모른다. 또한 그들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궁금해 하지 않으며, 나아가 그들은 시간에 대한 의식을 가질 수 없으므로 '현재'라는 것을 인지할 수도 없다. 따라서 그들은 발생부터 자연에 포획된 존재이자, 그들 자신을 자연에 내맡긴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에 포획되지 않는다.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존재이며,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은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한시도 삶을 지탱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며, 따라서 인간은 도구적 이성을 십분 활용하여 자연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이성적 능력은 유한한 이성이라는 점에서 다시 절망적이다. 이성적인 인간은 오직 지적 능력을 통해 자신이 자연 속에 내던져진 존재라는 불합리한 현실을 깨달을 수 있지만, 그러한 불합리에 대해 아무렴 질문을 던질 지언정 해답을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하튼 인간은 이성적이며, 따라서 자신의 실존적 불합리를 깨달을 수 있고, 그로 인해 자연--세상--과의 합일을 강력히 열망하게 된다.



세상과의 합일을 바라는 인간의 열망은 결합에의 열망, 초월에의 열망, 그리고 헌신과 지향의 틀에 대한 열망으로 나뉜다. 이들 열망은 '합일'을 바라는 열망의 다양한 형태이므로 결국은 '합일'이라는 한 가지 본질로 귀속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먼저 1)결합에의 열망을 살펴보자. 가장 단순한 결합은 자신이 속한 사회와의 결합을 예로 들 수 있다. 사회가 우리에게 바라는 '그것'이 되기를 스스로 자처함으로써 기꺼이 우리 자신이기를 포기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사회가 우리에게 은행원이기를 요구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은행원이라는 역할을 나 자신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즉 우리의 '존재'를 역할에 내어줌으로써 우리의 존재 자체를 은폐하는 방식이다. 이때 우리는 실은 자신이 존재였단느 사실을 망각함으로써 세상으로부터의 분리감을 떨쳐낼 수 있다. 또 다른 종류의 결합으로는 술이나 마약 등의 도취적 의식이 있는데, 이는 일시적이고 비이성적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고독감에 대한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없다. 대신 프롬은 탁월한 대안으로서 '사랑하기'를 제안한다. 그가 말하는 성숙한 사랑의 요소는 상대방의 성장에 대한 '적극적 관심', 상대에 대한 '책임', 그리고 '존경' 등이 포함된다. 이때 중요한 건 상대를 독립된 개체로서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사랑은 종래에 소유로 변질될지도 모른다. 둘째로 2)초월에의 열망을 살펴보자. 앞서 반복하여 이야기했듯 인간이 세상으로부터 내던져진 존재임을 자각하고, 그리하여 무기력함에 이른다면, 인간은 이를 떨치기 위해 스스로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동적 존재임을 확인하고 싶어할 것이다. 즉 우리는 스스로가 그저 세상으로부터 비자발적으로 내던져진 수동적 존재라는 현실에서 벗어나 외부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동성을 발휘하길 욕망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예술을 예로 들 수 있다. 예술가는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 자신의 내면 세계를 외적으로 표현하며 또한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생성해낸다. 이때 생성된 창조물은 욕망의 표현이며 증거로 기능할 수 있다. 끝으로 3)헌신과 지향의 틀에 대한 열망을 살펴보자. 이는 쉽게 말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분투라 할 수 있다. 내던져진 사막 속에서 그래도 걸어야 할 이유를 만들어내고자 함이다. 즉 무엇을 지향해야 하고, 무엇에 헌신하며 살아야 할 지에 대한 자기만의 답안인 것이다. 예컨대 혹자들은 정치와 결탁하여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종교적 교리에 귀의하여 삶의 의미를 확신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그러한 '틀'을 만들어내는 것이 때로는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정확한 목표로 기능할 수도 있으나, 반면에 인간의 삶을 구속하고 저해하는 우상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03.프롬의 윤리학

-성격의 윤리론-


앞서 말했듯 인간은 본능보다 이성이 발달한 존재이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은 무한히 자유로운 이성이 아니다. 이른바 성격이 이성의 한계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우리가 자유로이 이성적 사고를 수행하고 있다고 자각할 때조차 실은 자신의 성격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사고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프롬의 윤리학은 인간의 성격에 대한 고찰로 나아간다. 즉 좋은 성격이란 무엇이며, 무엇이 인간의 성격을 왜곡시키는지에 대한 탐구가 프롬의 윤리학적 가치관을 채우는 것이다. 프롬에 따르면 성격은 생산적인 성격과 비생산적인 성격으로 구분된다. 생산적인 성격이란 사랑, 연대, 정의, 이성을 추구하는 것으로서 생명친화적인 성격이라고도 불리우며, 비생산적인 성격이란 사디즘, 마조히즘, 파괴성, 탐욕, 나르시시즘, 가까운 사람들만 챙기는 배타적 애정 등으로서 파괴적인 성격이라고도 불리운다. 프롬은 인간에게 양자의 성격 증후군들이 함께 나타나기 쉽다고 말하면서도 생산적인 성격을 발달시키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롬은 인간의 성격 구조 형성에 있어 사회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예컨대 인간의 파괴적인 성격이 발달했다면 그가 몸담은 사회가 파괴적인 성격을 장려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프롬의 주장을 자칫 인간의 개인적 노력이 무용하다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인간은 한 사회의 일원일 뿐 아니라 온 인류의 일원이기도 하므로, 즉 개인은 사회적 성격만 물려 받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사랑을 향한 인류적 성격의 담지자이기도 하다.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조차 의인이 발견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이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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