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자들에게 인생의 즐거움을 묻다』, 이하준
이하준 교수가 실존주의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다름아닌 '자기 서사적 삶을 살아라'이다. 과연 그가 말하는 <자기 서사적 삶>이란 무엇일까. 서사의 사전적 정의는 사건의 진행을 시간에 따라 기록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키워드는 '시간'이다. 서사는 필연적으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아마 고등학교 시절 문학 시간에 졸지 않은 이들이라면 지겹게 들었을 지도 모른다. '지문에 '서사적'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 지문 안에 '시간'을 나타내는 지시어가 있는지 잘 찾아보세요' 하고 말이다. 그렇다. 서사란 곧 시간이다. 또한 시간은 역사성을 갖는다. 즉 <자기 서사>란 자기가 써내려간 역사이며, <자기 서사적 삶>이란 자기만의 역사를 써내려가라는 말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역사를 <어디에> 써내려가냐 하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저자의 답은 <존재 사이의 틈>이다. 존재의 <현실>과 존재의 <지향> 사이에는 커다란 <틈>이 자리해 있다. 존재의 현실이란 아무런 목적 없이 던져진 우리의 현실을 뜻하며, 존재의 지향이란 그 목적을 갖고자 하는 우리들의 의지를 말한다. 그 사이의 간극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무한한 공간처럼 보인다. 이에 이하준 교수는 그곳을 채우기 위한 방법으로서 <자기 서사적 삶>을 제안하는 것이다.
인간은 던져진 자다. 우리 모두는 영문도 모른 채 세상에 던져졌다. 다시 말해 인간은 존재의 기반을 채 갖추지도 않은 채 아주 우연하게 생성된 존재다. 실존주의자들은 이를 존재의 우연성, 혹은 존재의 무기반성이라 한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존재의 무기반성은 <무>와 다름아니다. 사르트르에게 인간은 지니고 태어난 것이 없는 존재이다. 이는 인간을 불안에 떨게 하는 한편 자유를 선사하기도 한다. 주어진 본질이 없으므로 자신의 '무'에 무엇을 채워가든 그건 인간의 자유가 아니겠는가. 다시 말해 인간은 '무'를 채우기 위해, '존재의 무기반성'에 기반을 갖추기 위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그 <노력>이 책의 저자 이하준 교수에겐 <자기 서사적 삶>이며, 사르트르에겐 <기투>다. 삶에 <던져진 자>에서, 삶에 자신을 <던지는 자>로의 전환을 가능케 하는 것, 그리하여 자기 존재의 공백을 빼곡히 채워나가는 삶 말이다.
책을 통해 흥미로운 점을 깨달았다. 여러 실존주의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자기 대면의 공간'이 나타난다는 점 말이다. 이를테면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속 <사막>이란 사람들이 없는 적막한 혼자만의 공간으로 사유되며 즉 생텍쥐페리에게 실존이란 <사막에 홀로 있음에 대한 인식>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속 그레고르가 홀로 존재하는 그의 <방> 또한 소외의 공간인 동시에 자신의 실존을 마주하는 공간이며, 나아가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에서 위버멘쉬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공간으로 제시한 <사막>도 앞서 말한 『어린왕자』 속 사막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자신의 <홀로 있음>을 대면하는 것이 '실존'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첫걸음이라는 점이다. 세상에 나만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바로 그 절대적 고독, 철저한 소외, 뼈저린 외로움 말이다. 이러한 고독감은 인간에게 불안을 선사한다. 그것은 사막에서 나홀로 죽음에 방치된 것 같은 두려움과 다름 아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을 벗어 던지기 위해 자신만의 우물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가령 섹스라던가, 사치라던가, 명예라던가, 인정욕이라던가. 그렇게 한참을 정신 없이 물을 길어 마시다 보면 사막에 있어도 사막에 있지 않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자기기만>의 단계다. 고독을 직시하지 못한 채 사실은 자기가 고독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자위에 이르는 단계, 즉 우리는 고독을 직면하기 보단 회피하는 법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홀로 존재하는 차가운 고독을 두려워 하는 이는 타인과 함께하는 따뜻한 공존도 누릴 줄 모른다. 고독을 외면한 채 공존의 장소로 도망치는 것은 타인의 서사로 내 삶을 채워나가려는 무기력증만 동반할 따름이다. 그러니 사막의 시간을 기꺼이 감내하자. 한 번 뿐인 인생을 '낙타'로만 살다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