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에 관한 촌평: ep5. 평등한 세상
작품 내용이 많이 담겨 있으니, 스포주의를 고지합니다..!
세번째 게임 줄다리기도 끝이 났다. 기훈(이정재 분)의 무리는 일남(오영수 분)의 연륜과 상우(박해수 분)의 기지로 간신히 승리한다. 잠시후 참혹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상대 무리의 모습은 '너의 죽음 = 나의 승리'라는 등식을 증명할 따름이다. 이윽고 게임을 진행하는 일꾼들이 사체를 수습한다. 그런데 몇 명의 일꾼 등이 이상 행동을 보인다. 사체 중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들을 선별하여, 의사 출신의 참가자 병기(유성주 분)로 하여금 장기를 적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꾼들은 적출된 장기를 암거래하여 사적인 이익을 챙기려는 자들로, 이러한 일탈은 게임 진행팀 몰래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그들은 앞으로 진행될 게임의 실마리를 미끼로 병기를 매수하여 그들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채우고 있던 것이다. 이는 관료적 질서 내부에 도사리는 부패의 전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일꾼들이 병기를 매수할 수 있었던 근거는 다음 게임에 대한 <정보>다. 이는 일꾼이기에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특권적>인 정보이고, 참가자들의 생존 가능성에 기여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가치>있는 정보이다. 일꾼들은 그들의 특권적 지위와 가치를 이용하여 사적인 이익을 도모한다. 요컨대 관료적 질서 체계 내에서 발생하는 부패의 매커니즘은 유효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정보>의 존재와, 그에 가닿을 수 있는 <특권적 지위>, 그리고 이를 이용해 사익을 불리기 원하는 개인의 <욕망>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일꾼들의 장기적출이 몇 달 전 LH 부동산 사태가 선명하게 중첩되는 점이 씁쓸하다. 그들 중 일부는 서민들의 고혈을 <적출>하는 데 어찌나 성실한 <일꾼>이었던가.
게임을 진행하는 일꾼 중 대표격에 해당하는 <프론트맨>은 장기매매로 적발된 일꾼들을 총살한다. 이어지는 그의 대사가 흥미롭다. "너희들이 시체에서 장기를 떼어내서 팔든 장기를 통째로 씹어먹든 나는 관심이 없어. 하지만 너희들은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걸 망쳐놨어. 평등이야." 이는 평등에 관한 그의 뒤틀린 인식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그가 스스로 고백했듯 그는 일꾼들이 지하에서 장기매매를 하건 말건 관심이 없다. 그가 확립하고자 하는 가치는 도덕과 윤리의 실제적인 회복이 아니라 오직 형식적인 평등이다.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은밀한 심층>에서 제아무리 끔찍한 타락과 부패가 피어날지라도, 프론트맨에게 보다 중요한 가치는 드러나는 곳의 형식적인 평등을 확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참가자들은 모두 맨몸으로 전장에 나선다. 그들 각각의 타고난 조건이 모두 다르지만 그들은 평등하게 게임에 임한다. 힘으로 상대를 제압해야 하는 게임이라면 연약한 노인이나 아이들은 죽어야 하고, 민첩한 사람이 살아남는 게임이라면 비루한 몸뚱이를 지닌 사람은 죽어야 한다. 그들이 타고난 각기 다른 조건은 선천적 결함이자 운명으로 여겨질 뿐 타인에 의해 <보정>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사유되는 것이다. 이는 경쟁에 관한 오늘날의 담론과 얽혀 더 복잡한 질문을 자아낸다. 애초에 출발점이 다른 경쟁자들을 아무런 보정 없이 레이스에 올리는 것은 과연 평등한 것일까. 진실은 늘 극단과 극단의 사이 어디에선가 열심히 줄다리기하기 마련이며, 따라서 공정한 평등의 거처 역시 <결과적 평등>과 <과정의 평등> 사이 어디엔가 존재할지 모르겠다. 참고로 5화의 제목은 '평등한 세상'이다. '불평등한 세상'을 뒤집어 꼬집는 제목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사족: 사실 일꾼들과 병기의 공모가 처음 드러난 건 3화다. 눈치 빠른 시청자라면 그때 이미 일꾼과 병기의 공모 관계가 프론트맨의 주관 밖에서 벗어나는 일탈 행위임을 눈치챘을 것이다. 프론트맨이 장기매매를 주관했다면 애초에 일꾼 의사를 기용했으면 되지 않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