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에 관한 촌평: ep4. 쫄려도 편먹기
작품 내용이 많이 담겨 있으니, 스포주의를 고지합니다..!
두 번째 게임이 끝났다. 살아남은 사람의 수는 108명이다. 이로써 되돌아온 187명 중 어느덧 절반 가까이 죽었고, 적립된 상금은 348억이다. 게임을 뒤로 하고 다시 돌아온 배급시간, 이번 식사 메뉴는 달걀 하나와 사이다 한 병이다. 터무니 없이 적은 식사량에 분개한 덕수(허성태 분)의 패거리는 다른 참가자들의 식사를 가로챈다. 이윽고 자기 몫을 빼앗긴 참가자가 덕수에게 분노하여 시비가 붙는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덕수의 발길질에 맥없이 죽는다. 이를 지켜보던 다른 참가자들은 사람이 죽었다고 소리치다. 진행팀의 개입을 요청하지만 그들은 방관한다. 그리고 잠시 후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271번 탈락." 아울러 총상금의 표시액은 349억으로 1억 분 증가한다. 인간을 위시한 인간적 가치들이 숫자로 매겨지는 장면이다. 이는 과학 정신의 <양화적> 태도와 맥을 같이 한다. 요컨대 과학은 주어진 대상을 측정 가능한 수치로 수량화하려는 특성을 갖는다. 만약 그러한 양화적 태도가 기어이 측정 불가한 것을 대상으로 삼을 때 마침내 우리의 삶은 숫자의 세계로 전락한다. 내가 상대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기준과, 우리가 자신의 삶에서 어느 정도의 행복을 누리느냐 하는 정도, 나아가 성공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목표 등이 오직 숫자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가령 이름 모를 <누군가>의 정체성은 <271>번이라는 의미 없는 숫자로, 그의 <죽음>은 한낱 게임에서의 <탈락>으로, 또 그 죽음의 <무게>는 <1억>으로 측정되듯이 말이다.
이제 우리는 곧 참가자들이 편을 나눠 싸움을 붙게 될 것을 쉽사리 예측할 수 있다. 덕수의 폭력과 살인을 용납하는 진행팀의 묵인을 모든 참가자들이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제 참가자들의 쉼터는 <인간은 인간에 대해서 늑대>라는 철학자의 말처럼, 혹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철학자의 말처럼 처참한 살육장으로 전락하게 된다. 힘이 있는 자는 마땅히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무질서가 반가울 것이고, 힘이 없는 자에겐 고통과 비명이 가득한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훈(이정재 분)이 처음 271번의 죽음을 인지하고 진행팀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장면은 유의미하다. 이제껏 참가자들을 억압하는 존재로 사유되어 왔던 진행팀이 이제는 참가자들의 안전과 질서를 보호해주는 존재가 되도록 요청받기 때문이다. 이는 장 자크 루소의 전언처럼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라는 말이 불건전하게 적용된 예일지도 모르겠다. 아울러 참가자들의 앞선 갈등이 실은 진행팀이 <의도한 갈등>이었다는 사실 역시 흥미롭다. 가면을 쓴 진행 요원 중 한 명은 말한다. "다 게임의 일부라고." 순진한 참가자들은 사전에 예고된 총 여섯 번의 게임이 게임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규정된 게임, 즉 여섯 번의 공식적인 게임은 게임이 끝나고 나면 그들이 현실로 돌아온 것이라는 착각, 즉 현실은 게임이 아니라는 착각을 주기 위한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보드리야르가 지적했던 바와 같이 <감옥>은 '현실이 감옥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공간일지도 모르는 것처럼, 참가자들이 상상하는 여섯 번의 <게임>은 '현실이 게임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허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제 그들의 삶에는 게임과 비게임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한 삶은 게임이 되어버렸다.
이전 회차에서 참가자들은 점차 모여들며 제각기 무리를 이뤘다. 그런 맥락에서 세 번째 게임이 줄다리기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줄다리기는 참가자들의 집단주의적 양상을 진행팀이 은밀하게 <장려>하고 <지지>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적 의미의 시민들 역시 <소속되지 않은 개인>으로 홀로 설 수 없다. 우리는 어딘가에 속해야 하며, 이를 통해 자기 정체성의 큰 부분을 확보하도록 요청 받는다. 마찬가지로 참가자들은 그들의 능력껏 어떻게든 집단에 속해야 하며, 자신이 속한 집단의 존속은 상대한 집단의 멸절로부터 보장된다. <나>의 생명은 <너>의 죽음을 담보한다. 반드시 한 쪽은 패배할 수밖에 없음이 줄다리기의 필연성인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생명줄을 잡아당길 수밖에 없는 가혹한 처지는 과연 그들만의 운명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