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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Nov 19. 2021

Ep.7 유리 다리
: 삶과 죽음의 이분법

<오징어 게임>에 관한 촌평: ep7. VIP

작품 내용이 많이 담겨 있으니, 스포주의를 고지합니다..!


Ep7.

VIP



네 번째 게임이 끝났다. 살아남은 자는 17명. 그들은 동료의 구슬 전부를 손에 쥔 승리자들이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구슬 꾸러미가 <공언된 규칙>을 통해 참가자들의 목숨값으로 승격한 것이다. 이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한낱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의 차지를 위해 경쟁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숙소로 돌아온 참가자들은 당혹스러운 광경을 목격한다. 숙소에서 미녀(박주령 분)가 편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종전에 미녀는 네 번째 게임의 규칙, 즉 둘씩 짝을 이루라는 내용에 따르지 못했다. 참가자수가 홀수였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규칙을 따르지 못한 미녀가 죽었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살았다. 그녀는 이른바 <깍두기>였던 것이다. 본래 어린 아이들의 놀이 전통에서 유래한 깍두기의 개념은 두 편의 구성원수가 불균형할 때, 게임을 잘 못하는 약자를 챙겨주는 포용의 문화다. 즉 동수가 안 맞는다는 이유로 약자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동수의 두 편 중 전력이 조금 뒤지는 편에 약자를 소속시킴으로써 구성원 모두 참가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유대를 다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징어 게임의 깍두기는 <평등>을 외치는 프론트맨의 기치에 걸맞는 합리적 제도라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미녀(박주령 분)를 통해 선포된 깍두기의 결과론적 기능은 약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에 대한 참가자들의 신뢰를 강화하기보다, 오히려 종전의 경쟁을 허무한 것으로 전락시키는 역기능적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이를 다소 극단적으로 독해하면, 약자라는 이유로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쏟아내는 수많은 지원과 보호조치가 오히려 보통의 경쟁자들을 소외시키는 역차별적 결과로 이어지는 현상을 읽어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해석은 프론트맨이 주창하는 평등의 가치와 일관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타당성을 상실한다).



다섯번째 게임이 이어진다. 16명의 참가자들(네번째 게임이 끝나고 남은 17명 중, 부인을 잃은 남편이 자살한다)은 아직 게임의 내용을 모른 채 1번부터 16번 사이의 숫자 중 하나를 고를 것을 요청받는다. 참가자들은 부리나케 중간구역의 숫자들을 채간다. 남은 숫자가 몇 개 없다. 끝까지 갈팡질팡하던 기훈(이정재 분)은 고민 끝에 16번을 택한다. 이윽고 다섯번째 게임 종목이 발표된다. 게임은 <유리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이제 참가자들 앞에는 두 줄의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징검다리는 강화유리이거나, 일반유리이다. 참가자들은 매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뛰어올라야 하고, 만약 그들이 뛰어오른 곳이 일반유리라면 저 깊숙이 아래 뻗은 맨바닥에 떨어져, 으깨진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수없이 이중택일에 성공해야 한다. 게임에 앞서 그들이 고른 숫자는 다리를 건너는 순서다. 1번이 떨어지면 2번이, 2번이 떨어지면 3번이 건넌다. 그러므로 게임은 후번이 유리하다. 일등과 꼴등의 가치를 뒤집는 프론트맨의 비틀린 평등의식이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제 참가자들은 살아 남기 위해 강화유리를 골라야만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 위에 올라서기 전까지 결코 정답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확신할 수 없는 운명에 내몰린 채 <선택>할 것을 강요 받고, 그것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실로 큰 대가로 되돌아올 뿐이다. 그들이 치뤄야 할 대가는 그들이 선택해야 할 의무보다 과잉된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때 선택의 가지수가 두 가지라는 사실은 꽤나 상징적이다. 그들의 두 선택지--강화유리와 일반유리--는 곧 성공과 실패, 나아가 삶과 죽음의 도식으로 이어진다. 이는 우리 사회의 모든 산출물이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으로 귀착되는 세태와 닿아있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폭넓은 스펙트럼 안에서 각기 다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고유한 자아를 인정 받지 못하고, 오직 성공과 실패의 협소한 이분지 속에서 판가름되고 마는 존재로 전락한다. 이 같은 경쟁원리를 내면화 한 주체는 하염없이 다리를 건널 뿐이다. 말하자면 경쟁주체로서 우리의 생은 타인의 죽음을 밟고 지나온 상흔의 여정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침내 다리를 건너는 데 성공한 기훈과 상우, 그리고 새벽이 유리 파편에 긁힌 상흔은 우리 사회에 굵게 패인 흠집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7화를 통해 드러난 흥미로운 요소 하나는 VIP의 등장이다. VIP들은 게임의 운영을 후원하고, 게임을 통해 유희를 획득한다. 그들의 자본은 죽음을 재료로 유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참가자들이 돈을 욕망함으로써 게임이 형성된 것이 아니다. 애초에 돈이 게임을 직조했다. 이로써 게임판 안의 참가자들은 VIP가 놀이하는 게임 속 캐릭터로 전락한 것이다. 사실 이 같은 참가자들의 지위를 노골적으로 상징하는 대목은 이미 1화부터 예고되었다. 1화에서 기훈(이정재 분)은 푼돈을 불리려 경마장을 찾는다. 그는 자신의 소중한 돈을 고작 말의 운에 걸었다. 다행히 그가 택한 말은 열심히 내달렸고, 그는 상금을 받는다. 상금의 액수는 456만원이다. 흥미롭게도 오징어 게임의 상금 역시 456억이다. 이는 오징어 게임의 우승자를 알리는 복선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더욱 본질적으로는, 말과 기훈의 뒤바뀐 운명을 폭로하는 것이다. 그렇다. 참가자들은 말이 되었다. 경마장 안 말의 열심이 경마장 밖 사람의 욕망을 충당하듯, 게임 속 참가자들의 욕망이 게임 밖 VIP들의 유희를 시중드는 것이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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