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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Jan 31. 2020

정치와 윤리의 경계

<군주론>,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이라는 사상으로 더 잘 알려진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는 현대 학자들에게 많은 논쟁의 대상이다. 악마, 혹은 악의 교사부터 조국을 사랑한 애국지사에 이르기까지, 그를 수식하는 단어의 스펙트럼만으로도 논쟁의 치열함은 여실히 드러난다. 이와 같은 논쟁에서 마키아벨리에 대한 비판은 가위 얼마만큼 타당할까. 또한, 국가의 유지, 발전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용인될 수 있는 국가 지상주의적인 정치 이념이라 정의되는 마키아벨리즘은 그의 사상을 과연 잘 반영했다 할 수 있을까?



대표적인 논쟁은 '마키아벨리즘'이란 사상의 정의가 이미 함의하고 있듯 목적을 위해선 어떤 수단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결과론적 현실주의에 대한 강한 반발에서 나타난다. 그들은 마키아벨리가 국가만을 옹호하며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국민을 돌보지 않고, 나아가 도덕적 가치들을 경히 여기는 탈윤리적 정치 사상을 펼치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와 같은 비난의 근거는 책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배신과 잔인한 짓을 거듭하는데도 불구하고 지도자가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잔인한 수단을 그가 효과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자기 지위를 보존하려는 지도자는 선하지 않은 수단도 배워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 그 수단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을 줄도 알아야 한다." / "현명한 지도자라면 다른 사람들의 호의에 따라 결정되는 존경이 아니라,자기가 조성할 수 있는 두려움에 의존해야 한다." (군주론 中)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비판하는 이들의 주장을 가볍게 치부해버리기엔 그들의 얘기가 퍽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하게 한다. 분명 마키아벨리는 그의 저서를 통해 군주가 잔혹한 방법을 사용할 것을 장려했고, 국민에게 두려움을 조성할 것을 권장했으며, 선하지 않은 군주의 모습을 긍정했다. 모조리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종교를 그저 통치기반의 수단으로 사용하길 권유했고 나아가 전쟁의 신성함을 주장하는 등 현대적 가치관에서 통용되기 힘든 주장을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내내 마키아벨리에 대한 비판에 자꾸만 그를 두둔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현상만을 공격하는 협소한 시야에 대한 안타까움일까.


세상은 수많은 현상으로 둘러 쌓여 있다. 구태여 현상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뉴스를 틀면 쏟아져 나오는 사건∙사고들이 전부 현상과 다름아니다. 10대 청소년이 부모를 살해하고, 강남의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노부부가 동반 자살을 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오른 한 남성의 말이 여성혐오 논란으로 확대되는 등등. 우린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쉽사리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위의 사건에 대한 수사가 좀 더 진척되어 재보도가 될 땐, 좀 더 깊은 사건의 이면이 있음을 알게 된다. 줄세우기 학력 세태 속에 짓눌린 10대 청소년들의 울분, 복지의 그늘에 가려 물리적, 정서적으로 고립된 사회 계층의 고독, 긴 역사속에서 자연스레 굳어진 남성우월주의와 페미, 반페미의 관계 등. 모든 현상은 이렇듯 '본질'을 갖는다. 현상은 다만 표상이고 결과일 뿐, 결코 근원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현상을 관찰함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현상을 통해 비로소 '본질'을 들여다 볼 희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이 현상을 통해 본질을 들여다 보는 일을 '통찰'이라 해두자. 마키아벨리에 대해 비난하는 이들은 그가 주장한 현상만을 관찰함에 그쳐 끝내 그의 깊은 고심을 통찰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군주론>을 읽으며 국가 지상주의라는 말이 무색할만큼 국민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사랑이 내 마음을 스치며 그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어색하게 다가왔다. 어디 그의 마음을 느껴보자.


"현명한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자기에 대해 지나치게 실망하지 않도록 하는 한편, 국민들은 안심하고 살아 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군주론 中)


"국민은 군주보다 한층 더 현명하고 일관성이 있으며 현명한 판단도 더욱 잘 한다." (로마사 평론中 )



앞서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정치적 목적으로 잔혹한 방법을 사용할 것을 긍정한 바 있다. 하지만 그가 진심으로 소원한건 잔혹한 군주 자체가 아니다. 그의 진정한 관심은 국민의 안전, 나아가 국가의 평화에 있었고, 분열된 소국들로부터 이탈리아를 통합해 줄 강력한 군주를 상정함이 위기에 봉착한 피렌체에 보다 현실적인 지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울러 사랑과 도덕을 앞세우지만 실상 부패한 가톨릭에 크게 실망했고, 윤리적인 군주가 실질적으론 국익에 반하는 정치를 펼치는 것에 이골이 난 것이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국민들이 더 이상 군주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면모에 집착하지 않길 바랬고, 현실 정치에서 국가를 지키고 보호해줄, 즉 때에 따라선 잔혹한 방법도 서슴지 않을 강력한 군주상을 소망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마키아벨리는 정치와 윤리를 구분한 최초의 근대 정치철학자로 자리매김할 발판을 마련한다.



정치와 윤리를 다루는데 현실 정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선거철, 혹은 주요 인사 관직의 배치가 일어나는 시기마다 공공연히 보여지는 흑색 비방, 정치 경쟁자의 인성을 공격하는 선거 캠페인은 유통기한도 없는듯 돌고 돈다. 효과가 크기에 사라지지 않는 법, 선두를 달리던 후보의 치명적인 과거가 폭로됨으로 그의 지지율이 곤두박질 친 사례를 우리는 자주 목격했다. 우리의 정치 지도자는 과연 인격적으로, 윤리적으로 훌륭한 사람이어야 할까?



비단 정치뿐이 아니다. 방송에 나온 한 연예인이 조금이라도 불성실한 모습이 카메라에 비춰지면 다음날 "모 연예인 태도논란"이란 제목의 기사로 여론은 들끓는다. 또 얼마 전 동계 올림픽에서 보여진 팀추월 논란에 대한 여론은 어땠는가. 심지어 김보름 선수를 영구 제명하라는 국민청원마저 잇달았다. 일련의 사태를 통해 놀란 점은 공인(*사전적 정의는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방송, 운동 선수 등 매체를 타는 사람까지 의미를 확대해보자)의 인성 수준에 대해 국민들의 높은 기대 수준이다. 정치인이야 그의 정책을 통해 우리가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 그렇다 쳐도, 운동선수, 방송인들의 인성이 나의 삶에 미칠 영향이 과연 무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높은 인성의 기준을 들이미는 이유는 또 무얼까. 생각 끝에 가닿은 것은 우리 모두의 훼손된 인간성과, 이로부터 해방할 탈출구를 찾고자 하는 어리석음은 아닐까.



남들보다 내가 앞서 나가기 위한 방법은 논리적으로 두 가지다. 좀 더 걸어 몇 걸음 나서는 법, 혹은 그를 내 뒤로 잡아당기는 법. 어쩌면, 우리가 저마다의 인격적 기준을 가지고 공인을 마음껏 재단하는 것은 해당 공인의 인간성을 훼손함으로 내가 좀 더 나은 인간이 될 기회를 확보하는 잔혹한 우매함은 아닐까. 마키아벨리는 500년 전에 이미 인간의 야수성을 폭로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 만연한 야수성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는 수많은 단독적 개인의 허우적거림은 되려 이 사회에 더욱 끈적해진 야수성의 늪을 완성할 따름이다. 다시 한 번 마키아벨리의 교훈이 제 멋대로 규정한 타인의 인성과 타인 그 자체를 동일시 하는 이 시대의 개인들에게 울려퍼질 경종이길 바란다. 애당초, 타인의 인성이라고 일컫는 부분이 그의 수 많은 행동 결과 중 몇 가지로 판단되는 나의 협소한 지성임을 염두에 둔다면 더욱 민망한 동일시가 아닌가.



정치 지도자의 윤리적 수준에 대한 국민적 기대의 풍토가 바뀌기란 사실상 쉽지 않아보인다. 또한, 섣불리 정치인의 정치적 자질과 윤리적 자질을 동일선상에 두는 여론재판이 잘못 됐다고 말하기도 쉽지는 않다. 다만, 정치인을 평가하는 가장 주된 요소에 오랜 시간 윤리성이 당당히 자리 잡고 있는 모습과, 이를 이용해 정치인들이 서로의 비윤리적 과거를 들추는 데만 바쁜 작금의 정치 형태가 어떠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낼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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