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서툴고 불안해보였나요

<밤 열한 시>, 황경신

by 혜윰

황경신 시인에게로 나를 안내한 짧은 문구를 볼까.


"내가 서툴고 불안해보였나요. 그건 내가 진심이었단 증거입니다. 소중하지 않았다면 왜 그토록 마음을 기울였겠어요. 망설이고 비틀거리고 안전부절 못하면서."


너무 짧아 몇 번의 읊조림만으로도 2년 동안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 문장이 날 시인에게 최초로 안내했던 문장이다. 진심이라서 서투를 수 밖에 없는 어린 어른의 연약함을 저리도 순박하게 담아내다니, 그 때의 나는 위로를 피할 길이 없었다.


시인은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20년 넘게 '페이퍼'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내가 황경신 시인을 좋아하게 된 데에는 대시인의 웅장하도록 예리한 통찰보다도 뭐랄까..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새벽, 망설임 끝에 느즈막히 전화 걸면 이제 막 깬 목소리로 얘기 들어줄 법한 푸근하고도 평범한 동네 누나 같은 감성이 좋았다. 인생이란 거. 거창하기도 하지만, 뭐 따지고보면 별거 없지도 않은가. 꾸밈없어 좋았고, 또 내가 못 본 것을 보며, 느낄 줄 아는 이 시인이 건네주는 소박한 위로는 내 얕은 마음 강가에 흘러 넘치도록 충분하게 다가왔다.




오늘 다시 한 번 <밤 열한 시>를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시간을 확인 해보니 2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짧은 호흡에 금방 읽어서는 놓치는 게 많을거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으나, 읽어야 했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읽은 건 아니고. 친한 동생한테 선물을 주기 앞서, 본래 책선물은 손때를 묻혀서 주는게 예의라는 생각 때문이라 해두자.


이 동생은 프랑스학을 전공하는 친구다. 더 보태면 마음이 참 여리고 착하다. 내 표현으로는 '느낄 줄' 아는 친구다. 무언가를 '보고', 본 것에 '반응'하고, 나아가 '느끼고', 궁극적으로는 '실천'하는 것. 그것이 이 친구가 살고 싶은 삶인 듯 하다. 아니 잘 모르겠다, 그것이 본인이 희망하는 삶인지는. 다만 자꾸 그 친구는 무언가 자꾸 보이고, 보이니 아프고, 아픈 마음을 부둥켜만 안고 있을 수 없어 뭐라도 실천하고 싶은데, 실천까지 가닿지 못하는 본인의 모습에 다시 혐오를 느끼는... 그런 여린 친구다.


이를테면, 부조리다. 세상의 부조리. 카뮈가 말했고, 카프카가 말했던 부조리 말이다. 열심히 살아도 행복할 수 없는 개인들, 그 약자들. 그런 개인들의 삶이 초라하도록 짓밟히는 가운데 너무나도 평온하게 빛나는 저 태양은 뭐고. 그 태양 아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열심히 타이핑하고 있는 내가 태연히 살아가는 이 세상은 뭐냐고 따지는거다. 그게 이 친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그로 인한 피로감. 하지만 내밀 힘 없는 몸뚱이. 그게 말이다.


이렇게 얘기하고보니 이 시집을 선물하는 것이 위로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너무 대놓고 위로 시집을 선물하는 건 괜히 우울감만 불러올거란 생각에 나름 엄선한 시집인데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다. 밤이 늦었다. 이제 그만 자야지. 이만 눈꺼풀에 내려 앉은 밤에 양보하러...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