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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당)하다

-실격 당한 본질을 위하여-

by 혜윰


4학년 2학기 기말 고사가 끝났다. 진짜 끝. 대학생 끝. 달갑지 않은 끝.


소속감의 부재가 주는 공포는 참 무섭도록 크다. 더이상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공포, 이 세계로부터 유리되어 있다는 느낌이 주는 막연한 공포 말이다. 그것은 영화 <그래비티>에서 라이언 스톤이 느낀 일종의 진공감과도 비슷할지 모르겠다. 영화에서 라이언 스톤은 지구에서의 '중력'이 너무도 부대낀 나머지 자유의 세계 우주로 떠나왔지만, 황망한 우주에서 도리어 그녀는 그 어떤 것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듯한 '단절감'을 느끼지 않았던가. 나또한 대학이란 울타리가 늘 마뜩찮았지만, 막상 울타리를 떠나 자유로운 한 마리 양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이리도 붕 떠있을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공포이자, 일말의 방향 감각조차 허락되지 않는 깜깜하고 막연한 세상을 의미한다.




세상에 나기 전 우리 모두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약 10개월을 지낸다. 이때 엄마는 '나'와 '세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이자 끈이다. 우리는 오로지 어머니를 통해 호흡하고, 어머니를 통해 감각하며, 어머니를 통해 반응한다. 그렇게 자그마치 10개월을 지낸 후에야 마침내 아기는 세상에 내던져진다. 근데 이때 아기가 치르는 아주 커다란 의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탯줄을 잘라내는 행위다. 이는 '나'와 '세계'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끈을 잘라내며 비로소 아기가 실존적 존재로 재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실존주의에 따르면, 발생-태어남-이후 모든 인간 투쟁의 역사는 세계와 관계 맺기 위한 노력의 발로라고 한다. 즉 또래 집단에서의 정체성 형성이나, 직업을 통한 자아실현, 혹은 심지어 사랑까지도 모두 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실존적 공포의 대안으로서 촉발되었다는 주장이다.



어안이 벙벙하다. 고작 하루만에 '대학생'이라는 정체성을 상실한 심정이 말이다. 다시금 나의 본질을 찾고자 노력해야만 하는 실존적 투쟁의 지난한 과정이 그려지며 정신이 아득해진다. 뭐가됐든, 그 누구도 멋대로 자를 수 없는 탯줄로 세계와 관계 맺고 있기를.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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