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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Feb 21. 2020

2. 연역논증 1)정언논리 ⑥존재함축

*유튜브 해설 : https://www.youtube.com/watch?v=q1yMToIyvqM&t=39s




이전 포스팅들을 통해 대당사각형을 비롯하여 환위, 환질, 이환 등의 개념들을 모두 간단하게 살펴봤습니다. 지금까지 다룬 모든 내용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 논리학을 기반으로 정리한 내용들입니다. 하지만 이 내용들은 현대 논리학으로 넘어오면서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그 변화의 중심엔 다름아닌 존재함축에 대한 논쟁이 있었죠. 따라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존재함축이 무엇인지, 또 존재함축에 대한 현대적 입장과 고전 논리학의 입장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존재함축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겠죠. 여러분은 다음의 명제를 보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어떤 유럽인은 키가 2m를 넘는다."


'아, 유럽인이 최소 한 명은 실제로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바로 그것이 존재함축입니다. 다시말해 주어진 명제는 유럽인의 존재를 은근하게 함축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런 명제는 어떤가요.


"모든 외계인은 인간 보다 강하다."


이 경우 주어진 명제는 외계인이 실제 존재한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나요? 만약 '그렇다 ' 라고 대답하신 분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편에 서신 거고요, '그렇지 않다' 라고 답하셨다면 19세기 영국의 수학자 조지 부울의 편에 서신 겁니다. 따라서 지금부터 둘의 견해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의 명제를 잘 읽어 보시고 제가 드릴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어떤 사과는 풋사과다."


저의 질문은 이렇습니다. 상자 안에는 사과가 실제로 들어 있을까요? 머릿속으로 답을 떠올리신 후 답을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질문에 대한 답은 들어있다 입니다. 왜냐하면 '어떤'으로 시작하는 특칭명제들은 해당 개념에 속하는 원소가 적어도 하나 이상 존재한다는 '존재함축'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어진 명제를 다음과 같이 바꾸면 어떨까요.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사과는 풋사과다."


이 경우도 상자 안에는 역시 사과가 들어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먼저 첫번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한 고전적 입장입니다. 이들에 따르면 상자 안엔 사과가 들어있다고 간주됩니다. 즉 이들은 전칭명제들도 존재함축을 갖는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반면 조지 부울의 입장은 다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부울은 전칭명제가 존재함축을 갖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쉽게말해서 '모든 사과'라는 말은 0 이상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직관과는 크게 어긋나는 주장이죠.





부울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당사각형을 참고하면 A명제와 O명제는 모순관계였죠. 다시말해서 A명제와 O명제는 동시에 참일수도 동시에 거짓일 수도 없는 모순관계입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A명제와 O명제를 상정해보겠습니다.



이 때 만약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따라 두 명제 모두, 존재함축을 갖는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유니콘은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두 명제 모두 유니콘의 존재를 함축한다면 둘 다 틀린 명제가 되겠죠. 하지만 이는 두 명제가 동시에 거짓일 수 없다는 모순관계를 어긋나는 일입니다. 따라서 부울은 애초에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정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혹시 이해가 안 되셨을 분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설명하겠습니다. 화면에서 a명제와 o 명제는 분명 모순관계입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두 명제 모두 존재함축을 갖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유니콘은 실존하지 않기 때문에 유니콘의 존재를 함축하고 있는 두 명제는 모두 거짓입니다. 이는 두 명제가 동시에 거짓이어서는 안 된다는 초기의 가정을 어긋나고 있으므로 따라서 두 명제 모두 존재함축을 갖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틀렸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부울은 특칭명제만이 존재함축을 가지며, 전칭명제는 존재함축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죠. 더 쉽게 말해 모든 이라는 말이 실은 공집합일 가능성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부울의 주장은 우리가 일상에서 모든 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언어감각과는 다소 이질적인게 사실입니다. 가령 마트에서 우리는 '모든 사과를 할인된 가격으로 팝니다' 라는 말을 보면 '아 이곳에서 사과 라는 것을 팔고 있구나' 하는 사실, 즉 사과에 대한 존재함축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가령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에게 '솔직하게 말해. 모든 잘못을 용서해줄게' 라고 말할 때는 어떨까요. 남자친구에게는 무조건 하나 이상의 잘못이 존재할까요? (물론 저의 개인적인 경험상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남자친구의 잘못이 공집합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또 다른 예시로 이런 명제는 어떤가요.



주어진 명제는 이 곳에 출입한 사람이 최소 한 명 이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나요? 꼭 그렇다는 법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출입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그러지 않길 바라며 써붙인 말일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이처럼 '모든'이라는 말은 공집합일 가능성을 얼마든지 포함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현대논리학은 이러한 부울의 견해를 따라 전칭명제는 존재함축을 갖지 않는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만약 전칭 명제가 존재함축을 갖지 않는다는 말이 잘 와닿지 않는다면 if의 형식으로 이해를 하셔도 좋습니다. 예를 들어 앞에서 살펴본 명제를 다음과 같이 바꾸는 식이죠.



이렇게 바꿔놓으면 '모든' 이라는 말에서 우리가 현혹될지도 모르는 착각을 금방 벗어던질 수 있을 겁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존재함축의 개념과, 또 존재함축에 대한 과거와 현대의 입장을 간단히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현대논리학의 입장을 따른다면 이전 포스팅들에서 배운 개념들을 조금 수정할 필요가 발생합니다. 그 내용은 바로 명제들 간의 관계입니다.



부울에 따르면 위 관계에서 성립가능한 것은 오직 모순 뿐이며 나머지 관계는 모두 폐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존재함축을 갖지 않는 것으로부터 존재함축을 갖는 명제를 추론할 수는 없는 법이며, 또한 A 명제와 E 명제는 동시에 참일 수 있고, I 명제와 O 명제는 동시에 거짓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울은 대당사각형에서 가능한 관계는 오로지 모순 뿐이라고 주장하며, 오늘날 현대논리학도 부울의 의견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부울이 대당사각형을 어떻게 기호화했는지만 살펴보고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부울은 대당사각형을 다음과 같이 기호화했습니다.



처음 보면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결코 어려운 내용은 아닙니다.


일단 E 명제에 해당하는 기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S하고 P가 나란히 적혀있죠. 이들이 뜻하는 바는 S와 P의 교집합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 교집합이 0이라고 적혀 있죠. 따라서 S이면서 P인 것은 없다, 다시말해 모든 S는 P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I 명제는 어떤가요.



S와 P의 교집합이 0은 아니다 라고 적혀있죠. 이는 달리말하면 P인 S가 적어도 하나 이상 존재한다, 즉 어떤 S는 P이다 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번엔 A 명제를 보겠습니다.


                                  



본래 A 명제의 구조는 모든 S는 P이다 라는 형태였죠. 또한 이를 환질하면 모든 S는 비P가 아니다 입니다. 이제 식을 살펴보시면 P 위에 줄이 하나 그어져 있죠. 이를 피 바(bar)라고 부르며 그 뜻은 비P를 나타냅니다. 즉 S이면서 비P인 것은 없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이 기호는 A 명제의 환질 명제와 동일한 내용을 나타냅니다.


반대로 O명제는 어떤가요.



O 명제는 S이면서 P가 아닌 것이 적어도 하나 이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죠.


이러한 기호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대각쌍에 위치한 두 기호가 모순 관계를 너무나도 선명하게 나타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먼저 A명제와 O명제를 보시면, SP는 0이거나 0이 아니어야 하므로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참이거나 반드시 거짓이어야겠죠.



마찬가지로 E명제와 I명제도 SP바는 0이거나 0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하므로 하나는 참 하나는 거짓인 관계입니다. 이처럼 부울의 기호는 대각선에 위치한 두 명제가 모순관계로 묶여있음을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로써 오늘의 내용을 모두 마쳤습니다. 아마 정언논리에서 다룬 내용 중에 가장 어렵고 복잡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정리해보면 매우 간단합니다.



오늘 내용이 어려웠다면 딱 이 두 가지만 기억하셔도 충분합니다. 아무쪼록 오늘도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재밌는 내용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적에 유튜브도 한 번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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